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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마이너] 인터뷰, 태연재활원 피해자 가족 “장애인 자주독립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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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5-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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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숙 씨가 집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부모연대

이 갈며 학대 공포 견딘 영철 씨
따귀 400회 맞은 상훈 씨
두 명 모두 쉼터 거주 중
피해자 가족 “자립할 수 있다면 뭐든 할 것”
울산시 ‘시설폐쇄 못 한다’, ‘예산 없다’

울산시 북구 대규모 장애인거주시설 ‘태연재활원(사회복지법인 태연학원. 거주인 185명, 직원 83명)’ 장애인 학대 사태가 언론에 알려진 지 두 달이 지났다.

1988년에 개원한 태연재활원은 40년 가까이 수십억에 달하는 정부 보조금을 받고 지자체의 지도·점검도 받았지만 단 한 번도 학대 사실이 적발된 적 없었다. 지난해 10월, 골절 진료를 받은 장애인 가족이 항의하면서 참사의 민낯이 드러나게 됐다.

울산북부경찰서가 지난해 10월 7일부터 한 달간 CCTV(폐쇄회로텔레비전)에 녹화된 영상을 확인한 결과, 생활지도원 등 가해자 21명은 장애인 29명에게 매일 상습적인 학대를 일삼았다. 갈비뼈가 부러질 때까지 때리거나 따귀를 왕복으로 내려쳤다.

울산북부서는 가해자 21명 전원을 검찰에 송치했다. 이 중 4명은 구속됐다.

구속된 가해자에게 학대당한 피해자 가족 두 명을 15일, 전화로 인터뷰했다. 이들은 눈물을 흘리며 엄벌을 요구했다. 또한 현재 쉼터에 머무는 자녀와 형제가 울산시에서 자립할 수 있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태연재활원서 40년, 이 갈며 학대 공포 견딘 52세 영철 씨

“이번에 구속된 사람 4명 중 3명이 영철이(가명, 발달장애인) 방에서 일하던 사람들이에요. 경찰이 전화 와서 그러더라고요. ‘(CCTV 확인 결과) 영철 씨는 누가 맞을 때 그걸 안 보려고 고개를 돌려 바닥을 보는 게 대부분입니다.’

그 얘길 듣고 영철이를 집에 데리고 왔더니 영철이가 이를 갈고 있는 거예요. 아랫니가 4개나 흔들려서 임플란트 치료를 해야 했어요. 참느라고 그런 거죠. 참느라고…”

김정심 씨의 남동생 김영철 씨는 약 40년간 태연재활원에 거주했다. 올해 52세가 된 영철 씨는 중학교 때까진 집에서 통학했다. 그러던 어느 날, 중학교에 있던 특수학급이 사라져 버렸다.

영철 씨 어머니는 전국을 수소문했지만 영철 씨가 다닐 만한 학교를 찾지 못했다. 울산에서 태연학교가 설립된단 얘길 듣고 영철 씨를 입학시켰다. 올해 2월, 학대 피해자인 영철 씨가 쉼터로 나오기까지 약 40년을 태연재활원에서 살았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영철 씨는 직접적인 학대 피해자는 아니라고 한다. 영철 씨가 벽에 기대어 있다가 가해자들이 밀치거나 발로 밀어내는 장면이 CCTV에 담겼지만 학대 피해로 인정되지 않았다.

신체적 학대는 다른 피해자에 비해 가벼울지 몰라도 정서적 학대는 심각했다. 구속된 가해자 4명 중 3명이 영철 씨가 살던 방에서 근무한 사람들이었다. 누나인 정심 씨는 “영철이가 학대 상황을 다 보고 참느라 이를 갈아서 생니를 뽑고 임플란트를 해야 했다”고 호소했다.

신체적 학대로 의심되는 일도 있었다. 태연재활원 사태가 알려지기 전인 지난해 여름, 영철 씨는 이마가 찢어지는 사고를 당했다. 생활지도원은 정심 씨에게 웃으면서 ‘다른 사람이 넘어지면서 영철 씨를 덮쳐서 일어난 사고’라 말했다고 한다. 그 생활지도원은 이번에 구속됐다.

정심 씨는 “이마가 갈라지듯이 찢어졌다. 상처가 아물지 않아서 한 달 반을 실밥도 못 뽑고 꿰맨 채로 있어야 했다. 사람이 이렇게 다쳤는데 어떻게 웃으면서 얘기할 수 있나. 어떻게 다쳤는지 알아보고 싶지만 방법이 없다. 속상하다”고 토로했다.

정심 씨가 영철 씨에게 뭐 때문에 다쳤냐고 물어봐도 영철 씨는 CCTV에 찍힌 것처럼 눈을 꼭 감고 외면한 채 ‘몰라’라고만 답변했다고 한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상처에 수면장애, 소화불량까지. 정심 씨는 “영철이는 매일 지옥처럼 살았다. 어떻게 상상을 할 수 있겠나”라고 말했다.

태연재활원 학대 피해가 공론화된 후 영철 씨는 석 달째 쉼터에서 지내고 있다. 쉼터에서 지내면서 수면장애와 소화불량이 사라졌다. 정심 씨는 “그 선생들(가해자들)이 그만두고 나서 영철이가 많이 좋아졌다. 잘 먹고 푹 잔다. 혼자서 잘 수 있는 걸 너무 행복해한다”고 말했다.

강정숙 씨가 집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부모연대
- 따귀 400회 맞은 27세 상훈 씨, 엄마는 투사가 됐다

“우리 상훈이(가명, 뇌병변·발달장애인)가 자립만 할 수 있다면 내 뭐라도 하겠어요. 내가 우리 상훈이한테 너무 미안해서… 사실 이러다가 우리 상훈이 시설에도 못 들어가고, 자립도 못 하게 되면 어쩌나 걱정이 많아요.

내가 문장력도 없고 아무것도 없지만서도 우리 상훈이 행복하게만 살 수 있으면 좋겠어요. 서울 와서 휠체어 타고 다니는 장애인들 보니까 우리 상훈이도 저렇게 살면 좋겠다 싶더라고요.”

강정숙 씨의 아들 김상훈 씨는 1998년생으로 올해 만 27세다. 19세에 태연재활원에 입소해 약 8년간 거주했다.

경찰은 처음에 정숙 씨에게 CCTV를 보여주지 않으려 했다. 상훈 씨가 학대를 심하게 당했기 때문이다. 정숙 씨는 보겠다고 했다. 확인을 해야 대책을 세울 수 있었다.

CCTV를 확인한 정숙 씨는 억장이 무너졌다. 가해자는 기어가는 상훈 씨의 따귀를 왕복으로 내려쳤다. 정숙 씨는 “400회가 넘도록 폭행당했다. 엄마의 심정은 땅으로 내팽개쳐졌다”고 말했다. 상훈 씨를 폭행한 가해자 2명 모두 구속됐다.

정숙 씨는 투사가 됐다. 서울과 울산을 오가며 태연재활원 공동대책위원회 투쟁에 참여 중이다. 울산시청 앞에서 1인 시위도 하고 있다. 평일 오전 11시 30분부터 오후 1시까지 두 달간 영하의 추위와 땡볕을 맞아가며 피켓을 들고 서 있다.

정숙 씨의 요구는 단 하나다. 상훈 씨의 자립이다. 처음엔 정숙 씨도 상훈 씨가 자립할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다. 확신은 서울에 와서 얻었다. 수많은 장애인이 각양각색의 휠체어를 타고 활동하는 걸 보고 ‘우리 상훈이도 이렇게 자립하면 되겠구나’ 생각했다고 한다. 현재 상훈 씨는 영철 씨처럼 쉼터에서 지내고 있다.

정숙 씨는 “우리 상훈이가 자립을 해야 되겠다고 생각을 한 거는, 내가 우리 상훈이한테 너무 미안해서. 그렇게 폭행을 당하는 줄도 모르고 상훈이를 (태연재활원에) 데려다주고. 엄마면서 그런 것도 몰랐다는 게 너무 미안해서 그렇다. 상훈이가 자립만 할 수 있다면 지금이라도 뭐든 해보려고 한다라고 말했다.

정숙 씨는 김두겸 울산시장에게 손 편지도 썼다. 그는 “내가 문장력은 없지만 편지는 정말 간절히 썼다. 제발 우리 피해자 장애인들 한 번만 쳐다봐 주시라고. 장애인들이 생을 마감할 때까지 자기 하고 싶은 거 하면서 행복하게만 살 수 있게 해달라고”라고 호소했다.

- 울산시 ‘시설폐쇄 못 한다’, ‘자립지원 예산 없다’

태연재활원 피해자 가족들은 15일 오전 11시, 울산시 남구 울산시청 남문 앞에서 집회를 열었다. 정숙 씨를 포함해 여러 피해자 가족이 김두겸 시장에게 쓴 손 편지를 낭독했다. 피해자 가족은 엄중한 처벌과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라고 요구했다.

울산시는 집회 후 이어진 피해자 가족과의 면담에서 ‘법대로 하면 시설폐쇄를 할 수 없다’, ‘장애인 자립을 지원하기 위한 예산이 없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장애인복지법에 따르면 시설 이용자에 대한 부당한 체벌, 폭행, 학대 등 인권침해가 발생한 경우 행정처분을 받게 된다. 1차 위반 시 개선명령, 2차 위반 시 시설장 교체, 3차 위반 시 시설폐쇄 처분이 내려진다.

태연재활원은 최근 3년간 학대 관련 행정처분을 받은 적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집단 학대 사건이 1차 위반으로 처리돼 개선명령 등의 솜방망이 처분으로 종결될 우려가 있다.

울산시는 면담에서 ‘시에서 변호사 등에게 자문했지만 바로 시설을 폐쇄하는 건 법 위반이라서 할 수 없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시 추가 활동지원서비스 지원에 대해서도 ‘예산이 없다’는 입장을 반복해 전달했다고 한다. 영철 씨의 경우 종합조사표를 토대로 10구간이라는 점을 짚으며 ‘(울산시가 영철 씨의 자립지원을) 할 수는 있는데 (예산 때문에) 하지를 못한다’고 답변했다.

면담에 참여한 정심 씨는 “면담 자리에서 삭발하고 싶었다”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그는 “80대가 되신 엄마도, 나도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른다. 영철이가 자립할 수 있게 제대로 (보건복지부와 울산시에) 따져야 한다는 걸 나도 오늘(15일) 깨달았다. 궁극적인 목표는 영철이의 자주독립”이라고 말했다.

태연재활원 학대 피해자 가족은 1인 시위를 계속 이어 나갈 예정이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 등도 공동투쟁단을 결성해 △김두겸 울산시장의 공식 사과 △사회복지법인 태연학원에 대한 엄중한 행정처분 및 사회서비스원으로 교체 △피해장애인의 지역사회 자립대책 마련 등을 요구 중이다.

출처 : 비마이너(https://www.bemino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