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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블뉴스] 노인장애인과 장애노인의 노후준비는 어떻게 다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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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6-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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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장애인과 장애노인의 노후준비는 어떻게 다른가.(생성형 AI로 제작한 이미지) ⓒ김영아

【에이블뉴스 김영아 칼럼니스트】 장애인의 노후를 이야기할 때 우리는 하나의 말로 표현하곤 한다.  장애가 있는 노인.

분명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이 말은 너무 많은 차이를 지워버린 말이다. 평생 장애와 함께 살아온 사람이 노년기에 들어서는 과정과 노년기에 질병이나 사고로 장애를 갖게 된 사람의 삶은 같지 않다. 삶의 모습도 욕구도 모두 다르다. 하지만, 정책과 현장은 이 차이를 굳이 구분하려 들지 않는다. 나이가 많으면 노인복지로, 장애가 있으면 장애인복지로 해석하는 식이다.

우리는 먼저 ‘노인장애인’과 ‘장애노인’을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다. 노인장애인은 젊은 시기부터 장애를 가지고 살아오다가 노년기에 접어든 사람이다. 이들에게 노후는 새롭게 시작되는 문제가 아닌  오래 누적된 삶의 연장선이다. 교육에서의 배제, 노동시장에서의 제한, 높은 가족 의존도, 지역사회 관계망 부족, 자기결정 기회의 박탈이 오랜 시간 쌓여 있다. 여기에 나이 듦이 더해진다.

노인장애인의 노후준비는 단순히 “건강을 챙기자”, “노후자금을 마련하자”는 말로 설명될 수 없다. 이미 준비할 기회 자체가 충분히 주어지지 않았던 삶에 대해, 뒤늦게 개인에게 준비 책임을 묻는 것은 부당하다.

반면 장애노인은 노년기에 들어선 이후 질병, 사고, 노화로 인해 장애를 갖게 된 사람이다. 이들에게 장애는 삶의 후반부에 갑자기 생긴 변화일 수 있다. 걷고, 일하고, 가족을 돌보고, 동네를 오가던 사람이 어느 날부터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생활하기 어려워진다. 이때 필요한 것은 장애인복지제도를 안내하는 수준을 넘어선다.

장애를 갖게 된 이후의 상실감, 역할 변화, 가족관계의 흔들림, 주거환경의 변화, 돌봄을 받는 사람으로 위치가 바뀌는 경험을 함께 다루어야 한다. 장애노인에게 중요한 것은 장애 이후의 삶을 리셋하는 것이다.

이 차이는 단순한 용어 문제가 아니다. 지원 방향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노인장애인에게 필요한 것은 장기화된 제한점을 보완하는 것이다. 특히 발달장애인, 중증장애인처럼 가족 돌봄에 의존해 온 경우 노후의 핵심 문제는 본인의 나이 듦만이 아니다. 부모가 늙고, 형제자매도 각자의 삶을 살고, 기존의 돌봄체계가 무너지는 것이 더 큰 위기다.

그럼에도 현재의 노후준비 담론은 지나치게 개인의 책임처럼 말한다. “미리 준비해야 한다” “계획을 세워야 한다” 말하지만, 정작 당사자가 계획을 세울 수 있는 정보와 지원인력은 충분히 제공되지 않는다. 준비하지 않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준비할 수 없게 만든 구조의 문제다.

장애노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노년기에 장애를 갖게 되면 노인복지와 장애인복지 사이에서 길을 잃기 쉽다. 병원에서는 퇴원을 말하고, 집에서는 돌봄 공백이 생기고, 주민센터에서는 제도별 신청을 안내한다. 그러나 당사자 입장에서는 내가 장기요양을 신청해야 하는지, 장애등록을 해야 하는지, 활동지원이 가능한지, 보조기기를 받을 수 있는지 판단하기 어렵기만 하다. 제도는 나뉘어 있고, 사람의 삶은 나뉘어 있지 않다. 그런데 지금의 지원체계는 여전히 제도에 사람을 끼워 맞추는 방식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두 집단 모두 ‘노후준비’라는 이름 아래 현실과 맞지 않는 요구를 받는다는 점이다.

노후준비라는 말은 대체로 자산관리, 건강관리, 여가, 사회참여를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노인장애인에게 노후준비는 “부모가 돌아가신 뒤 나는 어디서 누구와 살 것인가” “내가 아플 때 내 의사를 누가 알아들을 것인가” “내가 싫어하는 돌봄을 거부할 수 있는가”, “내가 죽음을 이해하고 애도할 기회를 가질 수 있는가”의 문제다. 장애노인에게 노후준비는 “장애 이후에도 내 집에서 살 수 있는가”, “이전의 관계와 역할을 어떻게 이어갈 것인가”, “돌봄을 받으면서도 존엄을 잃지 않을 수 있는가”의 문제다. 같은 노후준비라는 말로는 이 질문들을 담아낼 수 없다.

특히 노인장애인의 노후는 그동안 너무 늦게 발견되어 왔다. 장애인복지 현장은 오랫동안 자립, 교육, 고용, 주간활동을 중심으로 움직여 왔다. 물론 모두 중요하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나이 든 장애인’은 주변부에 놓였다. 발달장애인의 노후, 부모 사후의 삶, 사별과 애도, 중증장애인의 생애말기 돌봄, 의사소통이 어려운 사람의 의료결정 문제는 여전히 낯선 의제처럼 다루어진다. 당사자는 늙어가고 있는데, 현장의 언어는 아직 젊은 성인기의 자립에 머물러 있다.

장애노인 역시 충분히 보이지 않는다. 노인복지 영역에서는 장애를 노화의 자연스러운 결과처럼 받아들이며 개별적 장애지원의 필요성을 약하게 본다. 장애인복지 영역에서는 노년기에 새롭게 장애를 갖게 된 사람을 주요 대상으로 상상하지 않는다. 그래서 장애노인은 노인복지 안에서는 ‘몸이 불편한 노인’으로 축소되고, 장애인복지 안에서는 ‘뒤늦게 온 사람’으로 취급된다.

따라서 지원방식이 달라져야 한다. 노인장애인에게는 생애기반 지원이 필요하다. 그 사람이 어떤 장애를 가지고 있는지 뿐만 아니라, 어떻게 살아왔는지, 누구에게 의존해 왔는지, 어떤 선택을 해본 경험이 있는지, 어떤 관계가 남아 있는지를 보아야 한다. 노후설계도 서류 몇 장을 작성하는 방식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일상생활 기록, 의사소통 방식, 선호와 거부, 건강 변화, 관계망, 위기 시 연락체계, 사별 이후 지원계획이 함께 준비되어야 한다. 특히 가족이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지역사회가 아무것도 모르는 구조를 바꿔야 한다. 가족의 기억 속에만 저장된 당사자의 삶은 가족이 사라지는 순간 함께 사라질 위험이 있다.

장애노인에게는 전환기 지원이 필요하다. 장애 발생 이후 병원, 재활, 주거, 돌봄, 보조기기, 소득보장, 가족상담이 한 흐름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퇴원 이후의 삶을 준비하지 않은 채 집으로 돌려보내는 것은 지역사회 복귀가 아니라 방임일 수 있다. 노년기에 장애를 갖게 된 사람에게는 제도 안내자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삶을 재구성해 줄 조정자가 필요하다. 무엇을 신청할 수 있는지보다 더 중요한 질문은 이 사람이 앞으로 어떻게 살 수 있는가이다.

노인장애인과 장애노인은 같은 사람이 아니다. 같은 지원으로 충분하지도 않다. 전자는 장애와 함께 살아온 긴 시간의 누적된 불평등을 안고 노년을 맞이한다. 후자는 노년의 삶 한가운데에서 장애라는 급격한 변화를 경험한다. 한 쪽에는 오래된 의존과 배제를 없애는 지원이 필요하고, 다른 한쪽에는 갑작스러운 상실 이후 삶을 다시 세우는 지원이 필요하다.

이제 장애인의 노후준비는 개인에게 준비하라고 말하는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준비하지 못한 사람을 탓하기 전에, 준비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었는지 물어야 한다. 장애노인을 노인복지로만 보내고, 노인장애인을 장애인복지 안에만 묶어두는 칸막이도 넘어서야 한다. 노후는 모두에게 오지만, 같은 얼굴로 오지 않는다. 그래서 지원도 같을 수 없다. 다르게 늙어온 사람에게는 다르게 준비할 권리가 있다.

출처 : 에이블뉴스(https://www.able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