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리어프리뉴스] 통합돌봄은 제도를 묶는 일이 아니라 삶을 지키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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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6-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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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가 한국 장애인 통합돌봄에 던지는 근본적인 질문
- 사단법인 해냄복지회 이사장 김재익
2026년 3월 27일부터「의료·요양 등 지역 돌봄의 통합지원에 관한 법률」이 전국적으로 시행되면서 이제 우리에게도 의료와 요양, 돌봄과 주거를 지역사회 안에서 연결할 수 있는 법적 틀이 마련되어 통합돌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 법의 지향은 분명하다. 노쇠하거나 장애가 있거나 질병을 가진 사람이 병원과 시설에만 의존하지 않고, 자신이 살아온 집과 지역에서 욕구에 기반을 둔 필요하고 다양한 지원을 받으며 계속 살아가도록 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제도가 출범한 지금 우리가 물어야 할 질문은 단순히 “통합돌봄법이 만들어졌는가”가 아니다. 그 법으로 인해 실제 사람의 삶이 달라지고 있는가, 특히 필요도가 높은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권리가 실질적으로 강화되고 있는가를 물어야 한다.
이 질문을 보다 분명하게 드러내는 비교 대상 국가가 네덜란드이다. 네덜란드와 한국을 비교하면 두 나라 모두 지역사회 중심의 돌봄을 지향하지만 그 제도를 바라보는 방식과 재정을 배치하는 방식, 그리고 장애인을 대하는 접근에서 실지로 상당한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1. 법을 하나 만들었다고 돌봄이 하나가 되는 것은 아니다
한국과 네덜란드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을 통합했는가’에서 시작한다. 한국은 돌봄통합지원법이라는 하나의 법을 만들어 시·군·구가 대상자를 발굴하고, 욕구를 조사하고, 개인별지원계획을 만들며 여러 서비스를 연결하도록 하였다. 이것은 이전에 비해 분명 중요한 진전이다. 이전에는 의료기관, 보건소, 장기요양기관, 복지기관, 장애인서비스 기관이 각각 움직였다면 이제는 한 사람을 중심으로 필요한 서비스를 함께 검토할 수 있는 법적 기반이 생겼다.
그러나 여기에는 하나의 근본적 한계가 있다. 통합지원법은 서비스를 연결하는 법이지, 필요한 서비스를 모두 새롭게 권리로 만들어 주는 법은 아니라는 점이다. 장애인에게 활동지원, 방문간호, 이동지원, 주거지원, 재활, 식사지원이 모두 필요하다고 개인별지원계획에 적을 수 있다. 그러나 실제 지역에 해당 서비스가 없거나 기존 제도의 자격기준을 충족하지 못하거나 예산이 부족하면 그 계획은 실현되지 않을 수 있다.
즉 한국은 지금 ‘계획의 통합’에는 들어섰지만 ‘급여와 재정의 통합’까지는 나아가지 못한 상태라 할 수 있다. 네덜란드는 구조가 다르다. 모든 돌봄을 하나의 법으로 통합한 나라는 아니지만, 장기간 집중적인 돌봄이 필요한 노인과 장애인을 Wlz, 즉 장기요양법의 큰 체계 안에서 지원하다 보니, 노인, 장애인, 정신건강 영역을 각자의 특성에 따라 구분하되 필요도에 따라 지원하는 방식이다.
여기에 Wlz 수준의 집중적 돌봄까지는 필요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지방정부 중심의 Wmo가 자립생활과 사회참여를 지원한다. 이 차이는 단순한 법률체계의 차이가 아니다. 한국은 먼저 “당신은 노인인가, 장애인인가, 어느 제도의 대상인가”를 확인하는 성격이 강하다면, 네덜란드의 장점은 상대적으로 “이 사람에게 어떤 지원이 얼마나 필요한가”를 먼저 본다는 데 있다. 통합돌봄에서 가장 중요한 전환은 바로 여기서 시작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2. 장애인의 삶은 65세가 된다고 다른 삶으로 변하지 않는다
한국 장애인정책에서 오랫동안 제기되어 온 문제 가운데 하나가 연령에 따른 제도 전환이다. 지금은 다소 달라졌지만 장애인이 65세를 전후해 활동지원과 노인장기요양의 경계에 놓이는 문제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인간의 삶을 생각하면 이것은 매우 이상한 일이다. 64세까지 장애인으로 살아온 사람이 생일이 지나 65세가 되었다고 해서 갑자기 그의 삶의 필요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의사소통 지원이 필요했던 사람이 갑자기 의사소통 지원이 필요 없어지는 것도 아니며, 활동지원이 필요했던 사람이 노인이 되었다는 이유로 그의 자립생활 욕구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네덜란드의 장기돌봄 체계가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시사점은 나이가 바뀌더라도 사람의 삶을 중심으로 지원의 연속성을 유지하는 사고이다.
한국도 이제 연령을 제도의 경계로 삼는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장애인이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장애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장애와 노화가 겹치면서 더 복합적인 지원이 필요해질 수 있다. 따라서 앞으로의 통합돌봄은 장애인과 노인을 서로 경쟁하는 집단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노화와 장애가 한 사람의 생애 안에서 서로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생애 전체를 따라가는 지원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3. 더 심각한 문제는 장애인이 통합돌봄에 들어가는 문 자체가 좁다는 데 있다
한국 돌봄통합지원법은 법률상 노인과 장애인을 모두 대상으로 한다. 그러나 시행단계에서는 두 집단을 동일하게 다루지 않는다. 노인은 65세 이상이라는 연령요건을 중심으로 통합지원 대상에 들어갈 수 있는 반면, 장애인은 장애의 정도가 심한 등록장애인이면서 다시 통합지원 필요성을 인정받아야 하는 구조이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통합돌봄이 필요한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은 장애의 이름이나 등급이 아니라 실제 삶의 위험과 지원필요도여야 한다. 장애 정도가 심하지 않더라도 혼자 사는 장애인이 있을 수 있다. 가족이 더 이상 돌봄을 제공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반복적으로 입원하고 퇴원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으며, 주거가 불안정하거나 사회적으로 극심하게 고립된 사람도 있다.
의사소통이나 이동에는 상당한 지원이 필요하지만 행정상 ‘중증’에 해당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런 사람을 단순히 장애 정도가 심하지 않다는 이유로 통합지원 밖에 두는 것은 통합돌봄의 철학과 맞지 않는다. 통합돌봄이 정말 사람 중심이라면 질문도 달라져야 한다. “이 사람은 중증장애인인가?”가 아니라 “이 사람이 지역사회에서 계속 살아가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라고 물어야 한다. 그 질문의 차이가 제도의 철학을 바꾼다.
4. 한국에는 네덜란드의 Wmo와 같은 ‘두터운 중간층’이 필요하다
네덜란드에서 한국이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Wlz만이 아니다. 오히려 장애인의 지역사회 생활에서 더 중요한 것은 지방정부가 중심이 되어 자립과 사회참여를 지원하는 Wmo와 같은 체계이다. 모든 장애인이 하루 종일 집중적 돌봄을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아무 지원도 필요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일주일 몇 차례의 가사지원이 필요할 수 있다.
어떤 사람에게는 이동지원이 중요하고, 다른 사람에게는 주거환경 조정이 필요하다. 사회적 고립을 막기 위한 참여지원, 단기간의 위기지원, 가족돌봄자가 쓰러지지 않도록 하는 휴식지원도 필요하다. 한국은 장애인의 일상지원이 지나치게 활동지원제도에 집중되어 있다. 활동지원에 진입하면 비교적 분명한 지원을 받을 수 있지만, 그 기준 밖에 있는 사람을 받쳐줄 지역사회 지원의 층은 상대적으로 얇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아주 심각한 위기에 처한 뒤에야 제도에 들어오는 경우가 많다. 통합돌봄은 사람이 무너진 뒤 구조하는 제도여서는 안 된다. 무너지기 전에 받쳐주는 제도여야 한다. 따라서 한국에도 중증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집중지원과 함께 장애 정도에 관계없이 지역사회 생활에 어려움이 있는 사람이 필요한 만큼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두터운 지역생활지원 체계가 필요하다. 이것이 진정한 예방적 통합돌봄이다.
5. 통합돌봄에 장애인을 넣었다면 장애인의 삶을 평가해야 한다
현재 한국 통합돌봄의 종합판정에서는 신체기능, 일상생활 수행능력, 의료필요, 영양, 주거환경 등이 주요하게 고려된다. 모두 필요한 요소이다. 그러나 장애인 통합돌봄이라면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발달장애인에게 의사소통 지원이 필요한가, 시각·청각장애인에게 정보접근 지원이 필요한가, 정신장애인에게 지역사회 관계와 위기지원이 필요한가, 중증지체장애인에게 활동지원과 보조기술이 충분한가, 직업생활과 사회참여를 계속할 수 있는가를 함께 보아야 한다.
장애인의 삶을 평가하면서 장애인의 삶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를 보지 않는다면 모순이다. 따라서 종합판정에는 최소한 의사소통, 자기결정, 사회참여, 행동지원, 이동, 고용·교육 참여, 관계 유지, 자립생활, 가족지원망, 지역사회 이탈 위험이 포함되어야 한다. 통합돌봄의 기준은 얼마나 아픈가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지원이 있어야 자신의 삶을 지속할 수 있는가가 되어야 한다.
6. 의견을 듣는 것과 결정권을 인정하는 것은 다르다
네덜란드의 경험에서 우리가 깊이 생각해야 할 또 하나의 지점은 이용자의 권한이다. 한국 돌봄통합지원법도 자기결정권을 언급하고 개인별지원계획을 세울 때 당사자의 의견을 듣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의견을 들었다’는 것과 ‘당사자가 결정하였다’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이다.
당사자에게 선택할 수 있는 서비스가 없는데 의견을 묻는다면 그것은 형식에 그칠 수 있다. 네덜란드는 PGB와 같은 개인예산을 통해 일부 영역에서 이용자가 지원방식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고, 이용자단체가 제도의 품질기준이나 운영 과정에 직접 참여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물론 네덜란드 역시 완전하지 않으며 제도 간 정보공유와 행정 복잡성이라는 문제를 안고 있다.
그러나 당사자를 단순한 서비스 이용자가 아니라 제도의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주체로 본다는 점은 분명히 참고할 가치가 있다. 한국에서도 통합지원협의체에 장애인 당사자와 자립생활센터가 실질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개인별지원계획 역시 전문가가 계획을 만든 뒤 장애인에게 설명하는 방식이 아니라, 먼저 당사자가 원하는 삶을 확인하고 그 삶을 실현하기 위해 어떤 제도가 필요한지를 전문가가 함께 설계하는 방식으로 바뀌어야 한다.
7. 네덜란드를 복사할 것이 아니라 한국의 장점을 더 강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렇다고 네덜란드가 완벽한 모델이라는 뜻은 아니다. 네덜란드는 의료·사회서비스 영역을 넘나드는 개인정보 공유에서 제도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반대로 한국은 통합지원정보시스템과 기관 간 자료연계의 법적 근거에서는 상당히 앞선 장치를 마련하였다. 따라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네덜란드 제도를 그대로 수입하는 것이 아니다. 한국은 이미 좋은 출발점을 가지고 있다.
하나의 통합지원법이 있고, 시·군·구라는 공적 책임주체가 있으며, 여러 기관의 정보를 연결할 법적 기반도 있다. 이 장점에 네덜란드의 필요도 중심 판정, 생애에 걸친 지원의 연속성, Wmo와 같은 두터운 지역사회 지원층, 안정적인 재정, 개인예산을 통한 선택권, 당사자의 제도적 참여를 결합해야 한다. 그리고 활동지원을 통합돌봄의 주변서비스가 아니라 장애인 지역생활을 지탱하는 핵심급여로 명확히 자리매김해야 한다.
8. 통합돌봄의 마지막 기준은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가’이다
우리가 통합돌봄의 성공을 평가할 때 방문서비스가 몇 건 늘었는지, 몇 명을 사례관리했는지, 몇 차례 회의를 열었는지만 보아서는 안 된다. 보다 본질적인 질문이 필요하다. 장애인이 병원에서 퇴원한 뒤 다시 시설로 가지 않고 지역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는가. 원하는 집에서 살 수 있는가. 필요한 활동지원과 의료지원을 끊김 없이 받고 있는가. 자신의 하루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가. 가족에게 모든 돌봄책임을 떠넘기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가. 지역에서 사람을 만나고 일하며 자신의 역할을 갖고 살아갈 수 있는가. 이것이 통합돌봄의 성과가 되어야 한다.
한국과 네덜란드의 비교는 결국 한 가지 진실을 우리 앞에 놓는다. 사람에게는 하나의 삶밖에 없는데 국가는 그 삶을 수많은 제도로 나누어 놓았다. 병원에서는 환자이고, 장애인제도에서는 장애인이며, 주거정책에서는 입주자이고, 고용정책에서는 근로자라고 하더라도 그 사람에게 자신의 인생은 하나이다. 그러므로 통합돌봄이 진정 통합해야 하는 것은 행정기관이 아니다. 한 인간의 삶이다.
앞으로 한국의 통합돌봄은 서비스를 연결하는 제도에서 권리를 보장하는 제도로 나아가야 한다. 노쇠와 질병을 중심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통합에서 장애와 사회참여, 자기결정까지 바라보는 통합으로 나아가야 한다. 행정기관이 삶을 설계하는 통합에서 당사자가 자신의 삶을 결정하는 통합으로 바뀌어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아주 단순한 질문 하나만 남아야 한다. “이 제도로 인해 장애인이 자신이 원하는 곳에서, 필요한 지원을 받으며,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되었는가.” 그 질문에 국가가 당당히 ‘그렇다’고 답할 수 있을 때 비로소 통합돌봄은 완성된다.
통합돌봄은 여러 제도를 한곳에 모아놓는 행정기술이 아니다. 사람이 어떤 몸을 가지고 태어났든, 얼마나 많은 도움을 필요로 하든, 끝까지 지역사회 안에서 한 사람의 시민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국가가 책임지는 삶의 체계여야 한다. 그것이 네덜란드와의 비교가 오늘의 한국 통합돌봄에 던지는 가장 크고도 무거운 질문이다.
출처: 배리어프리뉴스 https://www.barrierfreenews.com/
- 사단법인 해냄복지회 이사장 김재익
2026년 3월 27일부터「의료·요양 등 지역 돌봄의 통합지원에 관한 법률」이 전국적으로 시행되면서 이제 우리에게도 의료와 요양, 돌봄과 주거를 지역사회 안에서 연결할 수 있는 법적 틀이 마련되어 통합돌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 법의 지향은 분명하다. 노쇠하거나 장애가 있거나 질병을 가진 사람이 병원과 시설에만 의존하지 않고, 자신이 살아온 집과 지역에서 욕구에 기반을 둔 필요하고 다양한 지원을 받으며 계속 살아가도록 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제도가 출범한 지금 우리가 물어야 할 질문은 단순히 “통합돌봄법이 만들어졌는가”가 아니다. 그 법으로 인해 실제 사람의 삶이 달라지고 있는가, 특히 필요도가 높은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권리가 실질적으로 강화되고 있는가를 물어야 한다.
이 질문을 보다 분명하게 드러내는 비교 대상 국가가 네덜란드이다. 네덜란드와 한국을 비교하면 두 나라 모두 지역사회 중심의 돌봄을 지향하지만 그 제도를 바라보는 방식과 재정을 배치하는 방식, 그리고 장애인을 대하는 접근에서 실지로 상당한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1. 법을 하나 만들었다고 돌봄이 하나가 되는 것은 아니다
한국과 네덜란드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을 통합했는가’에서 시작한다. 한국은 돌봄통합지원법이라는 하나의 법을 만들어 시·군·구가 대상자를 발굴하고, 욕구를 조사하고, 개인별지원계획을 만들며 여러 서비스를 연결하도록 하였다. 이것은 이전에 비해 분명 중요한 진전이다. 이전에는 의료기관, 보건소, 장기요양기관, 복지기관, 장애인서비스 기관이 각각 움직였다면 이제는 한 사람을 중심으로 필요한 서비스를 함께 검토할 수 있는 법적 기반이 생겼다.
그러나 여기에는 하나의 근본적 한계가 있다. 통합지원법은 서비스를 연결하는 법이지, 필요한 서비스를 모두 새롭게 권리로 만들어 주는 법은 아니라는 점이다. 장애인에게 활동지원, 방문간호, 이동지원, 주거지원, 재활, 식사지원이 모두 필요하다고 개인별지원계획에 적을 수 있다. 그러나 실제 지역에 해당 서비스가 없거나 기존 제도의 자격기준을 충족하지 못하거나 예산이 부족하면 그 계획은 실현되지 않을 수 있다.
즉 한국은 지금 ‘계획의 통합’에는 들어섰지만 ‘급여와 재정의 통합’까지는 나아가지 못한 상태라 할 수 있다. 네덜란드는 구조가 다르다. 모든 돌봄을 하나의 법으로 통합한 나라는 아니지만, 장기간 집중적인 돌봄이 필요한 노인과 장애인을 Wlz, 즉 장기요양법의 큰 체계 안에서 지원하다 보니, 노인, 장애인, 정신건강 영역을 각자의 특성에 따라 구분하되 필요도에 따라 지원하는 방식이다.
여기에 Wlz 수준의 집중적 돌봄까지는 필요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지방정부 중심의 Wmo가 자립생활과 사회참여를 지원한다. 이 차이는 단순한 법률체계의 차이가 아니다. 한국은 먼저 “당신은 노인인가, 장애인인가, 어느 제도의 대상인가”를 확인하는 성격이 강하다면, 네덜란드의 장점은 상대적으로 “이 사람에게 어떤 지원이 얼마나 필요한가”를 먼저 본다는 데 있다. 통합돌봄에서 가장 중요한 전환은 바로 여기서 시작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2. 장애인의 삶은 65세가 된다고 다른 삶으로 변하지 않는다
한국 장애인정책에서 오랫동안 제기되어 온 문제 가운데 하나가 연령에 따른 제도 전환이다. 지금은 다소 달라졌지만 장애인이 65세를 전후해 활동지원과 노인장기요양의 경계에 놓이는 문제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인간의 삶을 생각하면 이것은 매우 이상한 일이다. 64세까지 장애인으로 살아온 사람이 생일이 지나 65세가 되었다고 해서 갑자기 그의 삶의 필요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의사소통 지원이 필요했던 사람이 갑자기 의사소통 지원이 필요 없어지는 것도 아니며, 활동지원이 필요했던 사람이 노인이 되었다는 이유로 그의 자립생활 욕구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네덜란드의 장기돌봄 체계가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시사점은 나이가 바뀌더라도 사람의 삶을 중심으로 지원의 연속성을 유지하는 사고이다.
한국도 이제 연령을 제도의 경계로 삼는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장애인이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장애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장애와 노화가 겹치면서 더 복합적인 지원이 필요해질 수 있다. 따라서 앞으로의 통합돌봄은 장애인과 노인을 서로 경쟁하는 집단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노화와 장애가 한 사람의 생애 안에서 서로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생애 전체를 따라가는 지원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3. 더 심각한 문제는 장애인이 통합돌봄에 들어가는 문 자체가 좁다는 데 있다
한국 돌봄통합지원법은 법률상 노인과 장애인을 모두 대상으로 한다. 그러나 시행단계에서는 두 집단을 동일하게 다루지 않는다. 노인은 65세 이상이라는 연령요건을 중심으로 통합지원 대상에 들어갈 수 있는 반면, 장애인은 장애의 정도가 심한 등록장애인이면서 다시 통합지원 필요성을 인정받아야 하는 구조이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통합돌봄이 필요한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은 장애의 이름이나 등급이 아니라 실제 삶의 위험과 지원필요도여야 한다. 장애 정도가 심하지 않더라도 혼자 사는 장애인이 있을 수 있다. 가족이 더 이상 돌봄을 제공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반복적으로 입원하고 퇴원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으며, 주거가 불안정하거나 사회적으로 극심하게 고립된 사람도 있다.
의사소통이나 이동에는 상당한 지원이 필요하지만 행정상 ‘중증’에 해당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런 사람을 단순히 장애 정도가 심하지 않다는 이유로 통합지원 밖에 두는 것은 통합돌봄의 철학과 맞지 않는다. 통합돌봄이 정말 사람 중심이라면 질문도 달라져야 한다. “이 사람은 중증장애인인가?”가 아니라 “이 사람이 지역사회에서 계속 살아가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라고 물어야 한다. 그 질문의 차이가 제도의 철학을 바꾼다.
4. 한국에는 네덜란드의 Wmo와 같은 ‘두터운 중간층’이 필요하다
네덜란드에서 한국이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Wlz만이 아니다. 오히려 장애인의 지역사회 생활에서 더 중요한 것은 지방정부가 중심이 되어 자립과 사회참여를 지원하는 Wmo와 같은 체계이다. 모든 장애인이 하루 종일 집중적 돌봄을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아무 지원도 필요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일주일 몇 차례의 가사지원이 필요할 수 있다.
어떤 사람에게는 이동지원이 중요하고, 다른 사람에게는 주거환경 조정이 필요하다. 사회적 고립을 막기 위한 참여지원, 단기간의 위기지원, 가족돌봄자가 쓰러지지 않도록 하는 휴식지원도 필요하다. 한국은 장애인의 일상지원이 지나치게 활동지원제도에 집중되어 있다. 활동지원에 진입하면 비교적 분명한 지원을 받을 수 있지만, 그 기준 밖에 있는 사람을 받쳐줄 지역사회 지원의 층은 상대적으로 얇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아주 심각한 위기에 처한 뒤에야 제도에 들어오는 경우가 많다. 통합돌봄은 사람이 무너진 뒤 구조하는 제도여서는 안 된다. 무너지기 전에 받쳐주는 제도여야 한다. 따라서 한국에도 중증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집중지원과 함께 장애 정도에 관계없이 지역사회 생활에 어려움이 있는 사람이 필요한 만큼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두터운 지역생활지원 체계가 필요하다. 이것이 진정한 예방적 통합돌봄이다.
5. 통합돌봄에 장애인을 넣었다면 장애인의 삶을 평가해야 한다
현재 한국 통합돌봄의 종합판정에서는 신체기능, 일상생활 수행능력, 의료필요, 영양, 주거환경 등이 주요하게 고려된다. 모두 필요한 요소이다. 그러나 장애인 통합돌봄이라면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발달장애인에게 의사소통 지원이 필요한가, 시각·청각장애인에게 정보접근 지원이 필요한가, 정신장애인에게 지역사회 관계와 위기지원이 필요한가, 중증지체장애인에게 활동지원과 보조기술이 충분한가, 직업생활과 사회참여를 계속할 수 있는가를 함께 보아야 한다.
장애인의 삶을 평가하면서 장애인의 삶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를 보지 않는다면 모순이다. 따라서 종합판정에는 최소한 의사소통, 자기결정, 사회참여, 행동지원, 이동, 고용·교육 참여, 관계 유지, 자립생활, 가족지원망, 지역사회 이탈 위험이 포함되어야 한다. 통합돌봄의 기준은 얼마나 아픈가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지원이 있어야 자신의 삶을 지속할 수 있는가가 되어야 한다.
6. 의견을 듣는 것과 결정권을 인정하는 것은 다르다
네덜란드의 경험에서 우리가 깊이 생각해야 할 또 하나의 지점은 이용자의 권한이다. 한국 돌봄통합지원법도 자기결정권을 언급하고 개인별지원계획을 세울 때 당사자의 의견을 듣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의견을 들었다’는 것과 ‘당사자가 결정하였다’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이다.
당사자에게 선택할 수 있는 서비스가 없는데 의견을 묻는다면 그것은 형식에 그칠 수 있다. 네덜란드는 PGB와 같은 개인예산을 통해 일부 영역에서 이용자가 지원방식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고, 이용자단체가 제도의 품질기준이나 운영 과정에 직접 참여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물론 네덜란드 역시 완전하지 않으며 제도 간 정보공유와 행정 복잡성이라는 문제를 안고 있다.
그러나 당사자를 단순한 서비스 이용자가 아니라 제도의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주체로 본다는 점은 분명히 참고할 가치가 있다. 한국에서도 통합지원협의체에 장애인 당사자와 자립생활센터가 실질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개인별지원계획 역시 전문가가 계획을 만든 뒤 장애인에게 설명하는 방식이 아니라, 먼저 당사자가 원하는 삶을 확인하고 그 삶을 실현하기 위해 어떤 제도가 필요한지를 전문가가 함께 설계하는 방식으로 바뀌어야 한다.
7. 네덜란드를 복사할 것이 아니라 한국의 장점을 더 강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렇다고 네덜란드가 완벽한 모델이라는 뜻은 아니다. 네덜란드는 의료·사회서비스 영역을 넘나드는 개인정보 공유에서 제도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반대로 한국은 통합지원정보시스템과 기관 간 자료연계의 법적 근거에서는 상당히 앞선 장치를 마련하였다. 따라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네덜란드 제도를 그대로 수입하는 것이 아니다. 한국은 이미 좋은 출발점을 가지고 있다.
하나의 통합지원법이 있고, 시·군·구라는 공적 책임주체가 있으며, 여러 기관의 정보를 연결할 법적 기반도 있다. 이 장점에 네덜란드의 필요도 중심 판정, 생애에 걸친 지원의 연속성, Wmo와 같은 두터운 지역사회 지원층, 안정적인 재정, 개인예산을 통한 선택권, 당사자의 제도적 참여를 결합해야 한다. 그리고 활동지원을 통합돌봄의 주변서비스가 아니라 장애인 지역생활을 지탱하는 핵심급여로 명확히 자리매김해야 한다.
8. 통합돌봄의 마지막 기준은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가’이다
우리가 통합돌봄의 성공을 평가할 때 방문서비스가 몇 건 늘었는지, 몇 명을 사례관리했는지, 몇 차례 회의를 열었는지만 보아서는 안 된다. 보다 본질적인 질문이 필요하다. 장애인이 병원에서 퇴원한 뒤 다시 시설로 가지 않고 지역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는가. 원하는 집에서 살 수 있는가. 필요한 활동지원과 의료지원을 끊김 없이 받고 있는가. 자신의 하루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가. 가족에게 모든 돌봄책임을 떠넘기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가. 지역에서 사람을 만나고 일하며 자신의 역할을 갖고 살아갈 수 있는가. 이것이 통합돌봄의 성과가 되어야 한다.
한국과 네덜란드의 비교는 결국 한 가지 진실을 우리 앞에 놓는다. 사람에게는 하나의 삶밖에 없는데 국가는 그 삶을 수많은 제도로 나누어 놓았다. 병원에서는 환자이고, 장애인제도에서는 장애인이며, 주거정책에서는 입주자이고, 고용정책에서는 근로자라고 하더라도 그 사람에게 자신의 인생은 하나이다. 그러므로 통합돌봄이 진정 통합해야 하는 것은 행정기관이 아니다. 한 인간의 삶이다.
앞으로 한국의 통합돌봄은 서비스를 연결하는 제도에서 권리를 보장하는 제도로 나아가야 한다. 노쇠와 질병을 중심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통합에서 장애와 사회참여, 자기결정까지 바라보는 통합으로 나아가야 한다. 행정기관이 삶을 설계하는 통합에서 당사자가 자신의 삶을 결정하는 통합으로 바뀌어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아주 단순한 질문 하나만 남아야 한다. “이 제도로 인해 장애인이 자신이 원하는 곳에서, 필요한 지원을 받으며,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되었는가.” 그 질문에 국가가 당당히 ‘그렇다’고 답할 수 있을 때 비로소 통합돌봄은 완성된다.
통합돌봄은 여러 제도를 한곳에 모아놓는 행정기술이 아니다. 사람이 어떤 몸을 가지고 태어났든, 얼마나 많은 도움을 필요로 하든, 끝까지 지역사회 안에서 한 사람의 시민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국가가 책임지는 삶의 체계여야 한다. 그것이 네덜란드와의 비교가 오늘의 한국 통합돌봄에 던지는 가장 크고도 무거운 질문이다.
출처: 배리어프리뉴스 https://www.barrierfre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