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돈 4만원→월급 100만원’ 자립 꿈꾼 성숙, 서울시 장애인일자리 폐지로 물거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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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3-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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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자체가 ‘탈시설 장애인’ 우선 고용하는 일자리
‘권리생산노동’ 인정받으며 전국 확산 중이었는데
오세훈·보수 정치인, 전장연 공격하며 사업 폐지
장애인·전담인력 450명 내년에 일자리 잃어
“이번 사태 본질은 최중증장애인 노동자에 대한 해고”
8월 8월 노무현시민센터에서 열린 노들장애인야학 30주년 개교기념제에서 박성숙 씨(가운데)가 공연을 하고 있다. 박 씨는 브라질 타악기를 연주하는 ‘노들쿵쿵차카차카’팀에서 활동하고 있다. 노들쿵쿵차카차카는 권리중심공공일자리 노동자들로 이뤄진 문화예술활동팀이다. 사진 강혜민
8월 8월 노무현시민센터에서 열린 노들장애인야학 30주년 개교기념제에서 박성숙 씨(가운데)가 공연을 하고 있다. 박 씨는 브라질 타악기를 연주하는 ‘노들쿵쿵차카차카’팀에서 활동하고 있다. 노들쿵쿵차카차카는 권리중심공공일자리 노동자들로 이뤄진 문화예술활동팀이다. 사진 강혜민
- 국감 나와 권리중심공공일자리 자랑한 서울시, 오세훈 취임 후 돌변
중증발달장애인 박성숙(49)은 고등학교까지 졸업했지만 학교 생활이 마냥 즐겁지는 않았다. 선생님들은 그에게 ‘장애인이 왜 학교에 다니냐’고 했다. 졸업 후엔 줄곧 집에만 머물며 집안일을 하고, 오빠 병시중을 들었다. 틈틈이 사탕봉지 싸는 일, 통에 이쑤시개 넣는 일 등을 부업으로 했다. 야학 오기 전에 장애인복지관을 4년 정도 다닌 게 그가 성인이 되어 한 사회생활의 전부다. 밖엔 잘 다니지 않았다. “창피해서 밖엔 안 나갔어요. 지하철 타면 사람들이 나보고 장애인이냐면서 쳐다봐서.”
그러다가 친구 어머니의 소개로 2018년에 노들장애인야학에 왔다. 야학 선생님들은 성숙에게 친절했고 공부도 잘 가르쳐 줬다. 성숙은 야학에 빠르게 적응하며 2021년부터 서울형 권리중심 중증장애인 맞춤형 공공일자리(아래 권리중심공공일자리) 노동자로 일했다. 그해 성숙이 권리중심공공일자리 노동자가 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권리중심공공일자리 정원 확대가 있었다.
권리중심공공일자리 사업은 우리사회에서 ‘노동능력이 없다’고 평가받았던 최중증장애인을 우선 고용하는 일자리로 2020년 7월 서울시에서 시작됐다. 우선 고용 대상자는 장애인거주시설에서 최근 3년 이내에 지역사회로 탈시설한 최중증장애인이다. 2021년 11월, 서울시복지재단이 펴낸 ‘서울형 권리중심 중증장애인 맞춤형 공공일자리사업 평가체계 연구’를 보면 권리중심공공일자리에 참여하는 노동자들의 특색을 알 수 있다. 노동자 평균 연령은 41세로, 절반 이상이 발달장애인이고 그다음으로 뇌병변장애인이 가장 많다. 참여자 대부분은 최근 4년간 어떠한 일도 해본 적이 없었다.
권리중심공공일자리 노동자들이 문화예술활동으로 그림을 그린 후 서로 이야기하고 있다. 박성숙 씨가 일어나서 자신의 그림에 대해 발표하는 모습. 사진 정택용
권리중심공공일자리 노동자들이 문화예술활동으로 그림을 그린 후 서로 이야기하고 있다. 박성숙 씨가 일어나서 자신의 그림에 대해 발표하는 모습. 사진 정택용
이들은 권익옹호활동, 문화예술활동, 인식개선활동이라는 3대 직무를 통해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을 홍보하며, 장애인 권리를 모니터링하는 활동을 해왔다. 장애를 이유로 세상에서 배제되었던 장애인이 공공의 장소에서 그림, 춤, 음악 등 다양한 방식으로 존재를 드러내고 목소리를 내는 것, 이 자체가 권익옹호활동이자 문화예술활동이며 장애인식개선활동이 된다. 이 노동은 지자체 입장에선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가 ‘장애인 인식개선을 위해 국가와 지자체가 노력해야 한다’고 한 권고를 이행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 노동의 긍정적 가치는 서울시도 인정한 바 있다. 2020년 국회 국정감사에 참고인으로 출석한 서울시 담당자는 “일할 기회조차 갖지 못하는 중증장애인이 헌법에서 보장하는 노동의 기회를 갖도록 공공이 자리를 마련해주는 데 큰 의미가 있다”면서 “서울시가 추구하는 공익적 가치는 경쟁, 성과, 생산성이 아니라 사회적 다양성이다.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마찬가지로 일할 권리가 있고, 그 노동의 가치를 동일하게 인정하는 게 (서울시가 말하는) 다양성”이라고 밝혔다. (▷관련 기사 : “새로운 노동 개념 필요하다”… 국감에서 언급된 ‘서울시 권리중심형 공공일자리’)
이 일자리는 이러한 의미를 인정받아 이후 경기도, 전라남도, 경상남도, 강원도 등 전국으로 확산됐다. 올해 5월엔 권리중심공공일자리를 명시한 ‘중증장애인 노동권 보장 및 고용 활성화를 위한 공공일자리 지원 특별법안’이 국회에 발의되기도 했다.
“돈도 벌고 친구들도 만나서 좋지.” 성숙이 웃으며 말했다. 이 일을 하기 전에 성숙이 쓸 수 있는 돈은 가족이 주는 월 4만 원의 용돈이 전부였다. 이제 그 스스로 돈을 벌게 되니 가족의 간섭이 조금 덜해졌다.
그러나 성숙은 2024년부터 더 이상 권리중심공공일자리 노동자로 일할 수 없게 되었다. 오세훈 서울시장 취임 후, 이 일자리에 대한 서울시 입장이 돌변한 탓이다. 서울시는 3월 초, 권리중심공공일자리 실태조사를 통해 “3년간 참여자의 직무활동 중 50.4%가 집회·시위·캠페인에 치중되는 등 실효성의 문제가 드러났다”며 권익옹호활동을 집요하게 문제 삼았다.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은 “전장연이 불법·폭력 시위에 중증장애인을 강제 동원했다”, “서울시 보조금을 유용해 시위 참여에 대한 일당을 지급했다”며 허위 사실을 퍼트렸다. 전장연의 지하철 시위, 탈시설 등을 공격하기 위한 보수 정치인들의 화살이 권리중심공공일자리로 꽂혔고, 보수 언론지는 이를 사실인 양 받아썼다. 서울시는 ‘이것이 여론’이라며 이를 빌미 삼아 지난 7월에는 시위·집회·캠페인을 하는 권익옹호활동을 직무에서 아예 제외시키고, 내년에는 해당 사업을 폐지하기로 결정했다. 서울시가 의회에 제출한 2024년도 예산안에서 이 사업은 삭제된 상태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권리중심공공일자리, 거주시설연계사업 폐지를 예고하자, 전장연은 지난 20일 55차 출근길 지하철 투쟁을 진행했다. 박경석 전장연 대표가 오세훈 서울시장을 규탄하는 피켓을 들고 발언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오세훈 서울시장이 권리중심공공일자리, 거주시설연계사업 폐지를 예고하자, 전장연은 지난 20일 55차 출근길 지하철 투쟁을 진행했다. 박경석 전장연 대표가 오세훈 서울시장을 규탄하는 피켓을 들고 발언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 돈 벌며 자존감 상승하고 다양한 관계 맺었지만… “이제 다시 집으로”
권리중심공공일자리 덕분에 성숙을 비롯한 최중증장애인들은 생애 처음으로 돈을 벌 수 있었다. 권리중심공공일자리는 주 20시간 일하는 시간제(월 100만 5,290원)와 주 15시간 일하는 복지형(월 75만 360원)으로 나뉜다. 만약 기초생활수급자라면 수급비가 조금 깎이지만 생계급여(1인 가구 기준 62만 3,368원)만 받을 때보다는 훨씬 여유로운 생활을 할 수 있다. 최저임금 적용에서 제외됐던 중증장애인이 지자체가 고용하는 권리중심공공일자리에선 최저임금을 받을 수 있었다. 어떤 이들은 그 덕에 성숙처럼 가족 내에서 조금 더 당당해질 수 있었고, 어떤 이들은 자립을 계획하고 있었다. 성숙이 권리중심공공일자리 노동자로 일하는 노들장애인야학의 천성호 공동교장이 말했다.
“일자리에 참여한 이후로 학생분들 자존감이 상승했어요. 돈을 벌게 되면서 자신이 사고 싶은 것을 사고, 가족과 친구들에게 먹을 것도 사줄 수 있게 됐잖아요. 집과 시설에만 갇혀 있던 사람들이 사회에 나와 노동으로 낮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됐어요. 사람으로서 자기 존재의 가치를 스스로 만들어 나갈 수 있게 됐다는 게 가장 큰 것 같아요. 그 전엔 돈도 없고, 낮 시간을 무료하게 보내다가 저녁에 야학 수업 들으러 왔죠. 돈 없으니 아무것도 못 사 먹고, 낮엔 ‘놀고 있으니’ 사람들한테 무시만 받고. 사람이 왜 노동해야 하는가를 이런 변화를 통해 볼 수 있는 것 같아요.”
이 일자리를 통해 최중증장애인 노동자들의 사회적 관계가 바뀌었다. 이들은 노동을 통해 다양한 사람을 만나면서 사회적 관계를 확장하고, 최중증장애인의 존재를 다양한 방식으로 세상에 내보였다. 권리중심공공일자리의 특징 중 하나는 직무가 세 가지로 정해져 있어도 세부 내용은 참여하는 장애인의 장애유형, 장애정도 등에 따라 함께 논의하며 만들어 가는 데 있다. 일자리를 만들어 가는 과정까지 노동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알아가며 의견을 제시하는 것 자체가 중증장애인에겐 중요한 경험이자, 권익옹호활동과 닿아있기 때문이다. 권익옹호활동, 문화예술활동, 장애인식개선강의를 구체적으로 어떠한 일로 만들 것인가를 직접 논의하는 과정에서 장애인 당사자가 맺는 사회적 관계의 역량 자체가 달라진다.
전장연은 22일, 권리중심공공일자리 장애인 노동자 400명 해고에 맞서 파업을 경고하는 결의대회를 열었다. 박성숙 씨가 “내년에도 일하고 싶다”고 발언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전장연은 22일, 권리중심공공일자리 장애인 노동자 400명 해고에 맞서 파업을 경고하는 결의대회를 열었다. 박성숙 씨가 “내년에도 일하고 싶다”고 발언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하지만 내년에 갑작스레 사업이 없어지게 되면서, 텅 빈 과거로 일상이 돌아서게 되었다. 성숙은 함께 일하는 동료들, 일자리에 참여하며 만난 근로지원인들의 이름을 나열하며 자신이 표현할 수 있는 최대치의 화와 답답함을 토로했다.
“복지관 다닐 때 어떤 선생님이 나보고 장애인시설에 들어가 살라고 했어요. 그런데 나 시설에 안 들어가려고요. 시설 들어가면 못 나오잖아요. 야학 다니면서 잘 살려고요. 일하면 돈도 벌고, 동료들도 만나고, 선생님도 만날 수 있는데 일자리 왜 뺏어가요. 뺏어가면 안 되죠. 서운하고 섭섭해요.”
성숙의 주변 동료들도 이 일자리가 없어지는 것에 대해 “마음이 아프다”는 말을 반복했다. 그의 동료 중 한 명인 김희자(42)는 “일자리 없으면 안 돼. 일자리 다시 돌아와야 해요”라고 말했다.
서울시 사업 폐지로 일자리를 잃는 것은 장애인 노동자만이 아니다. 사업이 폐지되면 해당 사업을 담당하는 전담인력 50명의 인건비도 끊긴다. 노들장애인야학에서 권리중심공공일자리 사업의 전담인력으로 일하는 이창현은 “권리중심공공일자리 노동자분들과 한 배를 탄 동료로서 지역사회의 변화를 만들어 가는 일에 보람을 느끼며 일해 왔다. 그런데 서울시가 우리가 탄 배를 없애 버렸다”면서 “일방적 사업 폐지에 화가 많이 난다”고 말했다.
이 사업을 서울시로부터 위탁 운영해 온 25개 기관의 일상도 모조리 무너진다. 내년에 사업이 없어진다는 소식에 성숙이 다니던 노들야학도 비상상황이다. 권리중심공공일자리 사업 첫해부터 참여해온 노들야학은 권리중심공공일자리 문화예술활동 직무 수행을 위하여 악기 연주, 움직임, 아프리카 댄스, 노래 만들기 등 요일별로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마련해왔다. 이를 위해 야학은 다양한 곳에서 강사들을 초빙했으나, 내년이 되면 더는 강사 초빙이 어렵다. 사업을 위탁받아 장애인 노동자를 고용하면서 받은 고용장려금 일부로 강사비를 마련했는데, 내년에 사업이 폐지되면 고용장려금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야학에서 어떻게든 자부담으로 프로그램을 돌릴 수는 있겠지만 지금처럼 똑같이는 못해요. 재원 자체가 줄어드니깐… 지역사회에서 다양한 활동하는 데에 제약이 있죠. 일자리를 잃어버린다는 건 낮에 했던 모든 일들이 사라지는 거예요. 아마 대부분 다시 집에만 있어야겠죠. 장애인 당사자분들 입장에선 자기 삶을 잃어버리는 거죠.” (천성호 노들야학 공동교장)
노들쿵쿵차카차카로 활동하는 권리중심공공일자리 노동자들이 공연 준비차 연습하고 있다. 사진 정택용
노들쿵쿵차카차카로 활동하는 권리중심공공일자리 노동자들이 공연 준비차 연습하고 있다. 사진 정택용
- ‘최중증장애인 고려 안 했다’ 비판에 서울시도 동의
박경석 전장연 대표는 이번 사태의 본질은 “최중증장애인 노동자에 대한 구조조정이자 해고”라고 지적했다. 이 일자리 사업 폐지에 대한 장애계의 비판이 거세지자, 지난 15일, 서울시는 해명자료에서 ‘내년도 전체 장애인 공공일자리 수는 올해보다 350개 늘었으며 예산도 증액됐다’고 밝혔다.
그러나 박 대표에 따르면 이는 절반만 사실이다. 박 대표는 “지금 서울시는 복지부의 장애인일자리 증가와 예산 증액을 오세훈 서울시장의 업적으로 자랑하는 속임수를 부리고 있다”고 규탄했다. 실제로 서울시 2024년 예산안을 보면, 보건복지부 장애인공공일자리 사업이 늘어남에 따라 서울시가 부담해야 하는 예산이 늘어났을 뿐이다. 복지부 사업은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예산을 나눠서 부담하는 매칭사업이기 때문에 지자체의 의지가 반영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반면, 서울시비 100%로 운영되던 권리중심공공일자리 예산 58억 원은 내년에 0원이 됐다. 권리중심공공일자리 대신 서울시가 도입한다는 ‘장애유형별 맞춤형 특화일자리(서울형 시간제)’ 예산은 40억 원이다. 전액 서울시비가 사용되는 장애인일자리 사업의 예산은 결국 31% 삭감된 것이다. 예산 삭감에 따라 정원도 400명에서 250명으로 줄었다.
서울시 발표에 따르면, 새로 도입되는 일자리에서 발달장애인의 경우 원예관리 보조, 택배 보조, 세탁물 정리원, 세차원, 장애 예술인이 일자리 예시로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일자리를 현재 권리중심공공일자리에 참여하고 있는 최중증발달장애인이 수행하기엔 불가능해 보인다. 최중증장애인들이 좀처럼 들어가서 일할 수 없었던 기존 보건복지부 장애인일자리 직무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박 대표는 “장애유형별 맞춤형 특화일자리는 기존 보건복지부 장애인일자리 직무의 재탕에 불과하다”면서 “이는 최중증장애인의 일자리 참여를 심대하게 제한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지난 6월, 권리중심공공일자리 노동자들이 오세훈 서울시장에게 ‘일자리를 없애지 말아 달라’며 엽서쓰기 캠페인을 벌였다. 노동자 김정환 씨는 오 시장에게 보내는 편지에 “잘난 오세훈 시장님, 나는 비록 시장님처럼 잘나게 태어나지 못한 중증장애인입니다. 그렇지만 일을 하고 싶습니다. 제발 나에(의) 일자리를 뺏지 말아주세요”라고 썼다. 사진 전국권리중심중증장애인맞춤형공공일자리협회
지난 6월, 권리중심공공일자리 노동자들이 오세훈 서울시장에게 ‘일자리를 없애지 말아 달라’며 엽서쓰기 캠페인을 벌였다. 노동자 김정환 씨는 오 시장에게 보내는 편지에 “잘난 오세훈 시장님, 나는 비록 시장님처럼 잘나게 태어나지 못한 중증장애인입니다. 그렇지만 일을 하고 싶습니다. 제발 나에(의) 일자리를 뺏지 말아주세요”라고 썼다. 사진 전국권리중심중증장애인맞춤형공공일자리협회
실제로 신규사업에선 ‘3년 이내 탈시설한 최중증장애인을 우선 선발한다’는 채용 조건도 사라졌다. 노동시장에서 배제된 최중증장애인을 우선 고용하는 권리중심공공일자리의 취지가 고려되지 않은 것이다.
이재호 서울시 장애인자립지원과 장애인일자리팀 실무사무관도 이 지점에 동의했다. 그러면서 이 사무관은 “자료에 나온 건 예시고 수행기관에서 장애유형에 적합한 일자리를 갖고 온다면 심의과정에서 검토해 볼 수 있다”며 직무가 확정된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기존에 하던 권익옹호 활동은 안 된다”고 정확하게 선을 그었다. 이 사무관은 “권리중심공공일자리 직무로 권익옹호활동을 하는데 그 상대가 서울시가 되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면서 “그 사업을 하는 서울시에 와서 해당 사업을 더 늘려달라, 더 개선하라고 하는 게 애초의 권익옹호 활동의 취지였던 건지 잘 모르겠다. 그런 건 근무시간이 아니어도 할 수 있지 않나”라고 말했다.
“서울시 권리중심공공일자리 지속가능한 일자리 보장, 내년에도 일하고 싶습니다”라고 적힌 피켓 아래로 국화꽃이 보인다. 사진 하민지
“서울시 권리중심공공일자리 지속가능한 일자리 보장, 내년에도 일하고 싶습니다”라고 적힌 피켓 아래로 국화꽃이 보인다. 사진 하민지
- “새로운 노동 가능성 보여준 일자리, 사업 폐지는 노동 개념 퇴보시키는 것”
권리중심공공일자리 노동자들은 이 일자리를 “권리생산노동”이라고 부르며 “우리는 세상을 바꾸는 노동을 한다”고 선언해 왔다. 정창조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활동가는 권리중심공공일자리를 “기존에 자본이 요구하는 효율성, 생산성을 중심으로 한 노동만이 가치 있는 노동이라고 바라본 우리사회의 시선을 전환한다는 차원에서 매우 큰 의미가 있는 노동”이라고 평가하면서 “세상에서 가장 능력 없다고 여겨져 온 사람들이 직접 사회적 가치, 공공적 가치를 생산하면서 시민사회에서 이미 새로운 노동의 가능성을 열어준다고 평가받는 이 일자리를 이렇게 쉽게 없앤다는 건 노동에 대한 개념을 퇴보시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전장연은 “권리중심공공일자리 사업 폐지는 오세훈 서울시장의 부당하고 불의한 권력 횡포라는 것을 시민들에게 알리며 강경 대응할 것”이라고 밝히며, 지난 22일 권리중심공공일자리 노동자 파업을 예고하는 결의대회를 열었다. 오는 30일에는 국회 앞에서 사업 폐지를 규탄하는 전국결의대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권리생산노동’ 인정받으며 전국 확산 중이었는데
오세훈·보수 정치인, 전장연 공격하며 사업 폐지
장애인·전담인력 450명 내년에 일자리 잃어
“이번 사태 본질은 최중증장애인 노동자에 대한 해고”
8월 8월 노무현시민센터에서 열린 노들장애인야학 30주년 개교기념제에서 박성숙 씨(가운데)가 공연을 하고 있다. 박 씨는 브라질 타악기를 연주하는 ‘노들쿵쿵차카차카’팀에서 활동하고 있다. 노들쿵쿵차카차카는 권리중심공공일자리 노동자들로 이뤄진 문화예술활동팀이다. 사진 강혜민
8월 8월 노무현시민센터에서 열린 노들장애인야학 30주년 개교기념제에서 박성숙 씨(가운데)가 공연을 하고 있다. 박 씨는 브라질 타악기를 연주하는 ‘노들쿵쿵차카차카’팀에서 활동하고 있다. 노들쿵쿵차카차카는 권리중심공공일자리 노동자들로 이뤄진 문화예술활동팀이다. 사진 강혜민
- 국감 나와 권리중심공공일자리 자랑한 서울시, 오세훈 취임 후 돌변
중증발달장애인 박성숙(49)은 고등학교까지 졸업했지만 학교 생활이 마냥 즐겁지는 않았다. 선생님들은 그에게 ‘장애인이 왜 학교에 다니냐’고 했다. 졸업 후엔 줄곧 집에만 머물며 집안일을 하고, 오빠 병시중을 들었다. 틈틈이 사탕봉지 싸는 일, 통에 이쑤시개 넣는 일 등을 부업으로 했다. 야학 오기 전에 장애인복지관을 4년 정도 다닌 게 그가 성인이 되어 한 사회생활의 전부다. 밖엔 잘 다니지 않았다. “창피해서 밖엔 안 나갔어요. 지하철 타면 사람들이 나보고 장애인이냐면서 쳐다봐서.”
그러다가 친구 어머니의 소개로 2018년에 노들장애인야학에 왔다. 야학 선생님들은 성숙에게 친절했고 공부도 잘 가르쳐 줬다. 성숙은 야학에 빠르게 적응하며 2021년부터 서울형 권리중심 중증장애인 맞춤형 공공일자리(아래 권리중심공공일자리) 노동자로 일했다. 그해 성숙이 권리중심공공일자리 노동자가 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권리중심공공일자리 정원 확대가 있었다.
권리중심공공일자리 사업은 우리사회에서 ‘노동능력이 없다’고 평가받았던 최중증장애인을 우선 고용하는 일자리로 2020년 7월 서울시에서 시작됐다. 우선 고용 대상자는 장애인거주시설에서 최근 3년 이내에 지역사회로 탈시설한 최중증장애인이다. 2021년 11월, 서울시복지재단이 펴낸 ‘서울형 권리중심 중증장애인 맞춤형 공공일자리사업 평가체계 연구’를 보면 권리중심공공일자리에 참여하는 노동자들의 특색을 알 수 있다. 노동자 평균 연령은 41세로, 절반 이상이 발달장애인이고 그다음으로 뇌병변장애인이 가장 많다. 참여자 대부분은 최근 4년간 어떠한 일도 해본 적이 없었다.
권리중심공공일자리 노동자들이 문화예술활동으로 그림을 그린 후 서로 이야기하고 있다. 박성숙 씨가 일어나서 자신의 그림에 대해 발표하는 모습. 사진 정택용
권리중심공공일자리 노동자들이 문화예술활동으로 그림을 그린 후 서로 이야기하고 있다. 박성숙 씨가 일어나서 자신의 그림에 대해 발표하는 모습. 사진 정택용
이들은 권익옹호활동, 문화예술활동, 인식개선활동이라는 3대 직무를 통해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을 홍보하며, 장애인 권리를 모니터링하는 활동을 해왔다. 장애를 이유로 세상에서 배제되었던 장애인이 공공의 장소에서 그림, 춤, 음악 등 다양한 방식으로 존재를 드러내고 목소리를 내는 것, 이 자체가 권익옹호활동이자 문화예술활동이며 장애인식개선활동이 된다. 이 노동은 지자체 입장에선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가 ‘장애인 인식개선을 위해 국가와 지자체가 노력해야 한다’고 한 권고를 이행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 노동의 긍정적 가치는 서울시도 인정한 바 있다. 2020년 국회 국정감사에 참고인으로 출석한 서울시 담당자는 “일할 기회조차 갖지 못하는 중증장애인이 헌법에서 보장하는 노동의 기회를 갖도록 공공이 자리를 마련해주는 데 큰 의미가 있다”면서 “서울시가 추구하는 공익적 가치는 경쟁, 성과, 생산성이 아니라 사회적 다양성이다.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마찬가지로 일할 권리가 있고, 그 노동의 가치를 동일하게 인정하는 게 (서울시가 말하는) 다양성”이라고 밝혔다. (▷관련 기사 : “새로운 노동 개념 필요하다”… 국감에서 언급된 ‘서울시 권리중심형 공공일자리’)
이 일자리는 이러한 의미를 인정받아 이후 경기도, 전라남도, 경상남도, 강원도 등 전국으로 확산됐다. 올해 5월엔 권리중심공공일자리를 명시한 ‘중증장애인 노동권 보장 및 고용 활성화를 위한 공공일자리 지원 특별법안’이 국회에 발의되기도 했다.
“돈도 벌고 친구들도 만나서 좋지.” 성숙이 웃으며 말했다. 이 일을 하기 전에 성숙이 쓸 수 있는 돈은 가족이 주는 월 4만 원의 용돈이 전부였다. 이제 그 스스로 돈을 벌게 되니 가족의 간섭이 조금 덜해졌다.
그러나 성숙은 2024년부터 더 이상 권리중심공공일자리 노동자로 일할 수 없게 되었다. 오세훈 서울시장 취임 후, 이 일자리에 대한 서울시 입장이 돌변한 탓이다. 서울시는 3월 초, 권리중심공공일자리 실태조사를 통해 “3년간 참여자의 직무활동 중 50.4%가 집회·시위·캠페인에 치중되는 등 실효성의 문제가 드러났다”며 권익옹호활동을 집요하게 문제 삼았다.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은 “전장연이 불법·폭력 시위에 중증장애인을 강제 동원했다”, “서울시 보조금을 유용해 시위 참여에 대한 일당을 지급했다”며 허위 사실을 퍼트렸다. 전장연의 지하철 시위, 탈시설 등을 공격하기 위한 보수 정치인들의 화살이 권리중심공공일자리로 꽂혔고, 보수 언론지는 이를 사실인 양 받아썼다. 서울시는 ‘이것이 여론’이라며 이를 빌미 삼아 지난 7월에는 시위·집회·캠페인을 하는 권익옹호활동을 직무에서 아예 제외시키고, 내년에는 해당 사업을 폐지하기로 결정했다. 서울시가 의회에 제출한 2024년도 예산안에서 이 사업은 삭제된 상태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권리중심공공일자리, 거주시설연계사업 폐지를 예고하자, 전장연은 지난 20일 55차 출근길 지하철 투쟁을 진행했다. 박경석 전장연 대표가 오세훈 서울시장을 규탄하는 피켓을 들고 발언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오세훈 서울시장이 권리중심공공일자리, 거주시설연계사업 폐지를 예고하자, 전장연은 지난 20일 55차 출근길 지하철 투쟁을 진행했다. 박경석 전장연 대표가 오세훈 서울시장을 규탄하는 피켓을 들고 발언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 돈 벌며 자존감 상승하고 다양한 관계 맺었지만… “이제 다시 집으로”
권리중심공공일자리 덕분에 성숙을 비롯한 최중증장애인들은 생애 처음으로 돈을 벌 수 있었다. 권리중심공공일자리는 주 20시간 일하는 시간제(월 100만 5,290원)와 주 15시간 일하는 복지형(월 75만 360원)으로 나뉜다. 만약 기초생활수급자라면 수급비가 조금 깎이지만 생계급여(1인 가구 기준 62만 3,368원)만 받을 때보다는 훨씬 여유로운 생활을 할 수 있다. 최저임금 적용에서 제외됐던 중증장애인이 지자체가 고용하는 권리중심공공일자리에선 최저임금을 받을 수 있었다. 어떤 이들은 그 덕에 성숙처럼 가족 내에서 조금 더 당당해질 수 있었고, 어떤 이들은 자립을 계획하고 있었다. 성숙이 권리중심공공일자리 노동자로 일하는 노들장애인야학의 천성호 공동교장이 말했다.
“일자리에 참여한 이후로 학생분들 자존감이 상승했어요. 돈을 벌게 되면서 자신이 사고 싶은 것을 사고, 가족과 친구들에게 먹을 것도 사줄 수 있게 됐잖아요. 집과 시설에만 갇혀 있던 사람들이 사회에 나와 노동으로 낮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됐어요. 사람으로서 자기 존재의 가치를 스스로 만들어 나갈 수 있게 됐다는 게 가장 큰 것 같아요. 그 전엔 돈도 없고, 낮 시간을 무료하게 보내다가 저녁에 야학 수업 들으러 왔죠. 돈 없으니 아무것도 못 사 먹고, 낮엔 ‘놀고 있으니’ 사람들한테 무시만 받고. 사람이 왜 노동해야 하는가를 이런 변화를 통해 볼 수 있는 것 같아요.”
이 일자리를 통해 최중증장애인 노동자들의 사회적 관계가 바뀌었다. 이들은 노동을 통해 다양한 사람을 만나면서 사회적 관계를 확장하고, 최중증장애인의 존재를 다양한 방식으로 세상에 내보였다. 권리중심공공일자리의 특징 중 하나는 직무가 세 가지로 정해져 있어도 세부 내용은 참여하는 장애인의 장애유형, 장애정도 등에 따라 함께 논의하며 만들어 가는 데 있다. 일자리를 만들어 가는 과정까지 노동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알아가며 의견을 제시하는 것 자체가 중증장애인에겐 중요한 경험이자, 권익옹호활동과 닿아있기 때문이다. 권익옹호활동, 문화예술활동, 장애인식개선강의를 구체적으로 어떠한 일로 만들 것인가를 직접 논의하는 과정에서 장애인 당사자가 맺는 사회적 관계의 역량 자체가 달라진다.
전장연은 22일, 권리중심공공일자리 장애인 노동자 400명 해고에 맞서 파업을 경고하는 결의대회를 열었다. 박성숙 씨가 “내년에도 일하고 싶다”고 발언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전장연은 22일, 권리중심공공일자리 장애인 노동자 400명 해고에 맞서 파업을 경고하는 결의대회를 열었다. 박성숙 씨가 “내년에도 일하고 싶다”고 발언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하지만 내년에 갑작스레 사업이 없어지게 되면서, 텅 빈 과거로 일상이 돌아서게 되었다. 성숙은 함께 일하는 동료들, 일자리에 참여하며 만난 근로지원인들의 이름을 나열하며 자신이 표현할 수 있는 최대치의 화와 답답함을 토로했다.
“복지관 다닐 때 어떤 선생님이 나보고 장애인시설에 들어가 살라고 했어요. 그런데 나 시설에 안 들어가려고요. 시설 들어가면 못 나오잖아요. 야학 다니면서 잘 살려고요. 일하면 돈도 벌고, 동료들도 만나고, 선생님도 만날 수 있는데 일자리 왜 뺏어가요. 뺏어가면 안 되죠. 서운하고 섭섭해요.”
성숙의 주변 동료들도 이 일자리가 없어지는 것에 대해 “마음이 아프다”는 말을 반복했다. 그의 동료 중 한 명인 김희자(42)는 “일자리 없으면 안 돼. 일자리 다시 돌아와야 해요”라고 말했다.
서울시 사업 폐지로 일자리를 잃는 것은 장애인 노동자만이 아니다. 사업이 폐지되면 해당 사업을 담당하는 전담인력 50명의 인건비도 끊긴다. 노들장애인야학에서 권리중심공공일자리 사업의 전담인력으로 일하는 이창현은 “권리중심공공일자리 노동자분들과 한 배를 탄 동료로서 지역사회의 변화를 만들어 가는 일에 보람을 느끼며 일해 왔다. 그런데 서울시가 우리가 탄 배를 없애 버렸다”면서 “일방적 사업 폐지에 화가 많이 난다”고 말했다.
이 사업을 서울시로부터 위탁 운영해 온 25개 기관의 일상도 모조리 무너진다. 내년에 사업이 없어진다는 소식에 성숙이 다니던 노들야학도 비상상황이다. 권리중심공공일자리 사업 첫해부터 참여해온 노들야학은 권리중심공공일자리 문화예술활동 직무 수행을 위하여 악기 연주, 움직임, 아프리카 댄스, 노래 만들기 등 요일별로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마련해왔다. 이를 위해 야학은 다양한 곳에서 강사들을 초빙했으나, 내년이 되면 더는 강사 초빙이 어렵다. 사업을 위탁받아 장애인 노동자를 고용하면서 받은 고용장려금 일부로 강사비를 마련했는데, 내년에 사업이 폐지되면 고용장려금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야학에서 어떻게든 자부담으로 프로그램을 돌릴 수는 있겠지만 지금처럼 똑같이는 못해요. 재원 자체가 줄어드니깐… 지역사회에서 다양한 활동하는 데에 제약이 있죠. 일자리를 잃어버린다는 건 낮에 했던 모든 일들이 사라지는 거예요. 아마 대부분 다시 집에만 있어야겠죠. 장애인 당사자분들 입장에선 자기 삶을 잃어버리는 거죠.” (천성호 노들야학 공동교장)
노들쿵쿵차카차카로 활동하는 권리중심공공일자리 노동자들이 공연 준비차 연습하고 있다. 사진 정택용
노들쿵쿵차카차카로 활동하는 권리중심공공일자리 노동자들이 공연 준비차 연습하고 있다. 사진 정택용
- ‘최중증장애인 고려 안 했다’ 비판에 서울시도 동의
박경석 전장연 대표는 이번 사태의 본질은 “최중증장애인 노동자에 대한 구조조정이자 해고”라고 지적했다. 이 일자리 사업 폐지에 대한 장애계의 비판이 거세지자, 지난 15일, 서울시는 해명자료에서 ‘내년도 전체 장애인 공공일자리 수는 올해보다 350개 늘었으며 예산도 증액됐다’고 밝혔다.
그러나 박 대표에 따르면 이는 절반만 사실이다. 박 대표는 “지금 서울시는 복지부의 장애인일자리 증가와 예산 증액을 오세훈 서울시장의 업적으로 자랑하는 속임수를 부리고 있다”고 규탄했다. 실제로 서울시 2024년 예산안을 보면, 보건복지부 장애인공공일자리 사업이 늘어남에 따라 서울시가 부담해야 하는 예산이 늘어났을 뿐이다. 복지부 사업은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예산을 나눠서 부담하는 매칭사업이기 때문에 지자체의 의지가 반영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반면, 서울시비 100%로 운영되던 권리중심공공일자리 예산 58억 원은 내년에 0원이 됐다. 권리중심공공일자리 대신 서울시가 도입한다는 ‘장애유형별 맞춤형 특화일자리(서울형 시간제)’ 예산은 40억 원이다. 전액 서울시비가 사용되는 장애인일자리 사업의 예산은 결국 31% 삭감된 것이다. 예산 삭감에 따라 정원도 400명에서 250명으로 줄었다.
서울시 발표에 따르면, 새로 도입되는 일자리에서 발달장애인의 경우 원예관리 보조, 택배 보조, 세탁물 정리원, 세차원, 장애 예술인이 일자리 예시로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일자리를 현재 권리중심공공일자리에 참여하고 있는 최중증발달장애인이 수행하기엔 불가능해 보인다. 최중증장애인들이 좀처럼 들어가서 일할 수 없었던 기존 보건복지부 장애인일자리 직무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박 대표는 “장애유형별 맞춤형 특화일자리는 기존 보건복지부 장애인일자리 직무의 재탕에 불과하다”면서 “이는 최중증장애인의 일자리 참여를 심대하게 제한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지난 6월, 권리중심공공일자리 노동자들이 오세훈 서울시장에게 ‘일자리를 없애지 말아 달라’며 엽서쓰기 캠페인을 벌였다. 노동자 김정환 씨는 오 시장에게 보내는 편지에 “잘난 오세훈 시장님, 나는 비록 시장님처럼 잘나게 태어나지 못한 중증장애인입니다. 그렇지만 일을 하고 싶습니다. 제발 나에(의) 일자리를 뺏지 말아주세요”라고 썼다. 사진 전국권리중심중증장애인맞춤형공공일자리협회
지난 6월, 권리중심공공일자리 노동자들이 오세훈 서울시장에게 ‘일자리를 없애지 말아 달라’며 엽서쓰기 캠페인을 벌였다. 노동자 김정환 씨는 오 시장에게 보내는 편지에 “잘난 오세훈 시장님, 나는 비록 시장님처럼 잘나게 태어나지 못한 중증장애인입니다. 그렇지만 일을 하고 싶습니다. 제발 나에(의) 일자리를 뺏지 말아주세요”라고 썼다. 사진 전국권리중심중증장애인맞춤형공공일자리협회
실제로 신규사업에선 ‘3년 이내 탈시설한 최중증장애인을 우선 선발한다’는 채용 조건도 사라졌다. 노동시장에서 배제된 최중증장애인을 우선 고용하는 권리중심공공일자리의 취지가 고려되지 않은 것이다.
이재호 서울시 장애인자립지원과 장애인일자리팀 실무사무관도 이 지점에 동의했다. 그러면서 이 사무관은 “자료에 나온 건 예시고 수행기관에서 장애유형에 적합한 일자리를 갖고 온다면 심의과정에서 검토해 볼 수 있다”며 직무가 확정된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기존에 하던 권익옹호 활동은 안 된다”고 정확하게 선을 그었다. 이 사무관은 “권리중심공공일자리 직무로 권익옹호활동을 하는데 그 상대가 서울시가 되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면서 “그 사업을 하는 서울시에 와서 해당 사업을 더 늘려달라, 더 개선하라고 하는 게 애초의 권익옹호 활동의 취지였던 건지 잘 모르겠다. 그런 건 근무시간이 아니어도 할 수 있지 않나”라고 말했다.
“서울시 권리중심공공일자리 지속가능한 일자리 보장, 내년에도 일하고 싶습니다”라고 적힌 피켓 아래로 국화꽃이 보인다. 사진 하민지
“서울시 권리중심공공일자리 지속가능한 일자리 보장, 내년에도 일하고 싶습니다”라고 적힌 피켓 아래로 국화꽃이 보인다. 사진 하민지
- “새로운 노동 가능성 보여준 일자리, 사업 폐지는 노동 개념 퇴보시키는 것”
권리중심공공일자리 노동자들은 이 일자리를 “권리생산노동”이라고 부르며 “우리는 세상을 바꾸는 노동을 한다”고 선언해 왔다. 정창조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활동가는 권리중심공공일자리를 “기존에 자본이 요구하는 효율성, 생산성을 중심으로 한 노동만이 가치 있는 노동이라고 바라본 우리사회의 시선을 전환한다는 차원에서 매우 큰 의미가 있는 노동”이라고 평가하면서 “세상에서 가장 능력 없다고 여겨져 온 사람들이 직접 사회적 가치, 공공적 가치를 생산하면서 시민사회에서 이미 새로운 노동의 가능성을 열어준다고 평가받는 이 일자리를 이렇게 쉽게 없앤다는 건 노동에 대한 개념을 퇴보시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전장연은 “권리중심공공일자리 사업 폐지는 오세훈 서울시장의 부당하고 불의한 권력 횡포라는 것을 시민들에게 알리며 강경 대응할 것”이라고 밝히며, 지난 22일 권리중심공공일자리 노동자 파업을 예고하는 결의대회를 열었다. 오는 30일에는 국회 앞에서 사업 폐지를 규탄하는 전국결의대회를 개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