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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일보] “장애인 한 명 돌본다는 건 홀로서기 넘어 가족도 살리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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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5-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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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터사회적협동조합 직원들이 지난달 27일 경기도 고양 카페 ‘풍경’ 앞에서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장애인 사역을 흔히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에 비유한다. 공은 많이 들여야 하지만, 변화는 거의 느껴지지 않거나 매우 더디기 때문이다. 그러나 깨진 독에도 꾸준히 사랑을 부으면 언젠간 채워진다는 믿음으로 10년 넘게 장애인 일자리와 자립을 위해 운영되는 카페가 있다. 동화에서 두꺼비가 장독 바닥에 난 구멍을 막으려고 제 등을 내어주듯, 지역 교회는 약자인 이웃의 미래를 물심양면으로 지원하며 응원하고 있었다.

장애인이 빚어낸 커피 향기

경기도 고양 경의중앙선 야당역 앞 호수를 따라 10분 남짓 걷다 보면 아담한 카페 ‘풍경’이 나타난다. 지난달 27일 찾은 카페엔 주변을 산책하던 주민과 인근 교회에 왔던 성도들이 음료를 앞에 두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주문을 넣으니 직원들이 분주히 움직였다. 카페 벽면엔 ‘장애인과 통일민이 일하고 있습니다. 다소 늦더라도 배려하는 마음으로 양해 부탁드립니다’라는 문구가 안내돼 있었다. 하지만 이 안내가 무색하게 바리스타가 손님을 응대하는 방식도, 커피가 나오는 속도도 다른 곳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안내 매니저를 제외한 이 카페의 모든 직원은 새터민과 중증 장애인(발달장애)이다. 장터사회적협동조합(장터·이사장 심교정)이 거룩한빛광성교회(곽승현 목사)와 함께 만들어낸 특별한 일터다. 장터는 ‘장’애인과 새‘터’민에서 한 글자씩 딴 이름이다. ‘발달장애인들이 부모가 없어도 잘 살 수 있을까’라는 고민이 장터의 시작이었다.

거룩한빛광성교회 장로이기도 한 심교정 이사장은 “장애가 있는 아이들이 고등학교나 전문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갈 곳이 없어져 부모는 자녀를 돌보기 위해 대부분 일상을 포기하게 된다”며 “한 명의 장애인을 돌보는 것은 개인에게 스스로 삶을 살아갈 용기를 주는 것을 넘어 가족 전체를 살리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부모의 자랑’ 지적장애 주임 바리스타

2013년부터 지금까지 이 카페에서 일한 장애인과 새터민은 30명이 넘는다. 현재는 새터민 1명과 중증 장애인 8명이 일하고 있다. 9년 차 베테랑 바리스타인 허준목(28)씨도 그중 한 명이다. 지적 장애 2급인 허씨는 지난해 6월 승진해 주임이 됐다. 그는 “처음에는 떨려서 일도 잘 못 했다. 주문이 많이 밀리면 긴장도 되고 불친절한 사람도 적지 않게 있었다”며 “하지만 계속 일하다 보니 재미있다. 돈을 벌 수 있고, 부모님도 대견하다 칭찬해줘서 기분이 좋다”고 했다. 오븐에서 제때 꺼내 노릇하게 구워진 에그타르트만 봐도 행복하다는 허씨는 인터뷰 내내 환하게 웃었다. 장애인 바리스타는 하루 4~6시간 일한다. 월급은 110만원 이상이다. 본인이 원하면 계속 일할 수 있다.

거룩한빛광성교회는 설립 초기부터 장터가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다양한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 공간을 무상으로 빌려준 것이 가장 큰 도움이다. 교회의 인적 자원을 활용해 자원봉사자를 연계해주고, 조합원 가입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성도들은 카페를 자주 찾아와 장애인의 새 출발을 응원한다. 교회 안 카페 ‘올리브 향기’의 운영권도 장터가 맡고 있다.

일자리 넘어 홀로서기까지

장터가 운영하며 발생하는 수익금 대부분은 장애인의 자립과 일자리를 새로 만드는 데 쓰인다. 빵이나 커피 제조업 등 다양한 사업을 시도하며 지속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최근 장터는 발달장애인 근로자 2명을 뽑았다. 거룩한빛광성교회로부터 다양한 도움을 받아왔기에 장터는 교회 장애인 부서 성도를 우선 선발하고 있다. 장터는 교회 사랑부 100여명의 출석 성도 중 30%를 채용하는 등 목표 달성을 위해 사업 안정화를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 심 이사장은 “장터가 지금까지 장애인 일자리 등으로 지역 사회에 기여한 사회적 공헌은 16억원 수준으로 추산된다”며 “장애인과 그 가족들의 삶을 회복시킨 결과물”이라고 강조했다.

장터의 최종 목표는 장애인들의 자립이다. 지적 장애 2급인 원현제(26) 주임은 장터 직원으로 홀로서기에 성공한 첫 사례다. 원씨는 “카페 근처 원룸에서 혼자 산다”며 “시간이 날 때 공연을 마음대로 볼 수 있고, 부모님과 떨어져서 사니 행복하다”며 웃었다.

카페에서 먼저 일을 시작한 선배가 후배를 살뜰히 챙기며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은 장터의 오랜 문화다. 심 이사장은 “장애인들이 단순히 일만 하는 노동자가 아닌 비슷한 처지의 이들을 보살피고 돌보는 주체로 성장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물론 장터도 여느 사업과 마찬가지로 코로나 기간 직원 절반을 떠나보내는 등 어려운 시기를 겪기도 했다. 장터의 김성일 이사는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장애인들이 자립하고, 사회에서 존중받는 등 환경 변화를 끌어내고 싶다”며 “그 과정에서 장애인들이 먼저 서로를 품고 돌보는 사람들로 자라나길 기도한다”고 했다.

고양=글·사진 김동규 기자 kkyu@kmib.co.kr

[출처] 국민일보 https://ww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