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비장애인 기준으로 만들어진 사회엔 장애인 설 곳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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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5-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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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서씨는 척수사이 네이버 카페에 자신의 경험을 글로 남기고 있다.보조기구를 이용해 글을 쓰는 모습 ⓒ 박홍서
[인터뷰] 중증 척수장애인 홍서씨가 묻는, 무장애 도시 '진주'의 현실
박보현(qhathsu)
최근 진주시의회에서 무장애·교통약자 관련 조례 논의가 잇따르며 장애인 인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정작 그 정책의 주체인 장애인 당사자(이용자)의 참여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진주시가 '무장애 도시'를 선언한 지 10여 년. 그 약속은 지금 어디까지 왔을까.
지난 19일, 경남 척수장애인협회 진주시지회 사무실에서 중증 척수장애인 박홍서(59)씨를 만났다. 사무실 한켠에서 휠체어에 앉아 책을 읽고 있던 그는 인터뷰 도중 엉덩이가 베겨 몇 차례 자세를 고쳐 앉았지만, 이내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우리 없이 우리에 관해 말하지 말라(Nothing About Us Without Us)."
그가 '무장애 도시' 정책에 대해 꺼낸 첫 문장이었다. 이 문장은 장애인 인권 운동의 핵심 원칙이다. 장애인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정책은, 그 당사자의 참여 없이 결정되어서는 안 된다는 뜻을 담고 있다.
"무장애 도시? 글쎄요"
그는 진주시는 2013년 '무장애 도시'를 선언하고 관련 조례를 제정했지만, 현실은 아직 멀었다고 말했다.
홍서 씨가 자주 찾는 연암도서관만 해도 장애인 주차장은 경사면에 있고, 출입구 앞 평지는 차량으로 막혀 있었고 도서관 내부 책상 높이는 휠체어와 맞지 않았고, 장애인 화장실의 호출 버튼이 작동하지 않았다.
그는 직접 관리자에게 문제를 제기해 일부 개선을 이끌어냈다.
"장애인이 우선 집 밖으로 나올 수 있어야 교육도, 노동도, 문화생활도 가능하잖아요."
그가 가장 시급하게 꼽는 과제는 '이동권'이다. "거리에서 휠체어 탄 장애인 보신 적 있나요? 버스 휠체어석에 장애인이 타 있는 모습은요? 거의 못 보셨을 거예요. 나오고 싶어도 나올 수가 없으니까요."
진주시 특별교통수단(장애인 콜택시)은 이용 대상 기준이 모호하고, 관외 이동 제한도 명확히 규정돼 있지 않아 대기 시간이 길다. 그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직접 시의원들을 찾아다니며 조례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 시행규칙에는 관외 이동 시 '진료 목적'이 명시돼 있는데, 진주 조례엔 그 내용이 없어요. 중증장애인 우선 원칙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요."
홍서씨는 '전환재활'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장애인이 받는 의료재활이 몸을 회복하는 과정이라면, 전환재활은 삶으로 돌아가는 과정이다. 휠체어로 버스를 타고, 마트에서 장을 보고, 은행 업무를 보며 지역사회 구성원으로 다시 서는 일이다.
동물농장과 인간의 굴레를 통해 바라본 "장애"
그는 요즘 책을 통해 세상을 다시 배운다.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과 서머싯 몸의 <인간의 굴레>를 장애와 인권의 시선으로 읽는다고 설명했다.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하지만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보다 더 평등하다.' 이 문장이 지금의 장애인 현실과 닮아 있지 않나요? 헌법과 교과서는 평등을 말하지만, 중요한 건 말이 아니라 현실이죠."
"회사 다녀올게." 그날이 마지막이었다 그는 사고 전에는 병원 원무과에서 근무하던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2000년 12월 초겨울, 아내에게 "회사 다녀올게"라고 말하며 집을 나선 그날이 두 발로 걸어 나선 마지막 순간이 됐다.
통영에서 환자를 태우고 돌아오던 중 구급차와 승용차가 충돌했고, 그는 목뼈 골절로 중상을 입었다. 경상국립대학교병원에서 응급 수술을 받은 뒤 중환자실, 신촌 세브란스병원으로 옮겨 재활치료를 이어갔다.
사고 이후 그의 일상은 완전히 달라져 버렸다. 손가락은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고, 다리는 '내 몸이지만 내 것이 아닌' 상태가 됐다.
"혼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게 너무 절망적이고 부끄러웠어요."
그를 가장 괴롭힌 건 신경인성 통증이었다. 불에 지지는 듯한 고통과 전기가 흐르는 듯한 저림이 밤마다 이어졌다. "의사가 그러더군요. '이 통증은 평생 관리하며 살아야 합니다.' 피할 수 없다면 같이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죠." 10개월의 입원 생활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
24평 아파트의 문턱은 휠체어 진입을 가로막았고, 욕실 역시 접근이 어려웠다. "여기서 내가 살 수 있을까." 집 밖의 환경도 다르지 않았다. 인도의 턱과 계단, 엘리베이터 없는 상가, 장애인 화장실이 없는 식당, 제때 오지 않는 저상버스가 일상을 가로막았다.
"비장애인을 기준으로 만들어진 세상 곳곳에서는 장애인이 설 자리가 없더군요. 제가 장애인이 되고 나서야 그걸 알았습니다."
박 씨는 결국 32평 아파트로 이사하며 집 구조를 전면 개조했다. 문턱을 없애고, 손잡이를 레버형으로 바꾸고, 세면대를 휠체어 높이에 맞췄다.
"그때 깨달았어요. 장애인의 자립은 개인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구조의 문제라는 걸요. 필요한 건 동정이 아니라 접근 가능한 사회였습니다."
퇴원 이후 돌봄의 부담은 고스란히 가족에게 돌아갔다. 그는 '산재'장애인 이라는 이유로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 대상에서 제외됐다. 결국 아내가 모든 돌봄을 전담해야 했다.
홍서 씨보다 체구가 작은 아내는 하루에도 여러 차례 그를 침대에서 휠체어로 옮겨야만 했다. 그러던 중 휠체어 잠금장치가 풀리는 사고가 발생했고, 이를 혼자 수습하려다 아내는 요추 골절을 입었다.
그러나 당장 아내를 대신할 공적 돌봄은 어디서도 구할 수 없었다. 결국 아들이 출근 전 이른 새벽 집에 들러, 휠체어 이동과 외출 준비를 도왔다. "한 시간만이라도 도와줄 사람이 필요했는데, 그게 그렇게 어렵더라고요."
홍서 씨는 묻는다. "장애인 당사자의 목소리가 빠진 무장애 도시가, 과연 무장애일 수 있을까요?"
"우리 없이 우리에 관해 말하지 말라(Nothing About Us Without Us). 이 원칙이 선언이 아니라 현실이 될 때, 무장애 도시는 비로소 선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삶이 될 것입니다."
그의 질문은 장애인의 삶을 좌우하는 정책이 당사자 없이 결정될 때 얼마나 공허한지를 꼬집는다.
출처: 오마이뉴스 https://www.ohmynews.com/
[인터뷰] 중증 척수장애인 홍서씨가 묻는, 무장애 도시 '진주'의 현실
박보현(qhathsu)
최근 진주시의회에서 무장애·교통약자 관련 조례 논의가 잇따르며 장애인 인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정작 그 정책의 주체인 장애인 당사자(이용자)의 참여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진주시가 '무장애 도시'를 선언한 지 10여 년. 그 약속은 지금 어디까지 왔을까.
지난 19일, 경남 척수장애인협회 진주시지회 사무실에서 중증 척수장애인 박홍서(59)씨를 만났다. 사무실 한켠에서 휠체어에 앉아 책을 읽고 있던 그는 인터뷰 도중 엉덩이가 베겨 몇 차례 자세를 고쳐 앉았지만, 이내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우리 없이 우리에 관해 말하지 말라(Nothing About Us Without Us)."
그가 '무장애 도시' 정책에 대해 꺼낸 첫 문장이었다. 이 문장은 장애인 인권 운동의 핵심 원칙이다. 장애인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정책은, 그 당사자의 참여 없이 결정되어서는 안 된다는 뜻을 담고 있다.
"무장애 도시? 글쎄요"
그는 진주시는 2013년 '무장애 도시'를 선언하고 관련 조례를 제정했지만, 현실은 아직 멀었다고 말했다.
홍서 씨가 자주 찾는 연암도서관만 해도 장애인 주차장은 경사면에 있고, 출입구 앞 평지는 차량으로 막혀 있었고 도서관 내부 책상 높이는 휠체어와 맞지 않았고, 장애인 화장실의 호출 버튼이 작동하지 않았다.
그는 직접 관리자에게 문제를 제기해 일부 개선을 이끌어냈다.
"장애인이 우선 집 밖으로 나올 수 있어야 교육도, 노동도, 문화생활도 가능하잖아요."
그가 가장 시급하게 꼽는 과제는 '이동권'이다. "거리에서 휠체어 탄 장애인 보신 적 있나요? 버스 휠체어석에 장애인이 타 있는 모습은요? 거의 못 보셨을 거예요. 나오고 싶어도 나올 수가 없으니까요."
진주시 특별교통수단(장애인 콜택시)은 이용 대상 기준이 모호하고, 관외 이동 제한도 명확히 규정돼 있지 않아 대기 시간이 길다. 그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직접 시의원들을 찾아다니며 조례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 시행규칙에는 관외 이동 시 '진료 목적'이 명시돼 있는데, 진주 조례엔 그 내용이 없어요. 중증장애인 우선 원칙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요."
홍서씨는 '전환재활'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장애인이 받는 의료재활이 몸을 회복하는 과정이라면, 전환재활은 삶으로 돌아가는 과정이다. 휠체어로 버스를 타고, 마트에서 장을 보고, 은행 업무를 보며 지역사회 구성원으로 다시 서는 일이다.
동물농장과 인간의 굴레를 통해 바라본 "장애"
그는 요즘 책을 통해 세상을 다시 배운다.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과 서머싯 몸의 <인간의 굴레>를 장애와 인권의 시선으로 읽는다고 설명했다.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하지만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보다 더 평등하다.' 이 문장이 지금의 장애인 현실과 닮아 있지 않나요? 헌법과 교과서는 평등을 말하지만, 중요한 건 말이 아니라 현실이죠."
"회사 다녀올게." 그날이 마지막이었다 그는 사고 전에는 병원 원무과에서 근무하던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2000년 12월 초겨울, 아내에게 "회사 다녀올게"라고 말하며 집을 나선 그날이 두 발로 걸어 나선 마지막 순간이 됐다.
통영에서 환자를 태우고 돌아오던 중 구급차와 승용차가 충돌했고, 그는 목뼈 골절로 중상을 입었다. 경상국립대학교병원에서 응급 수술을 받은 뒤 중환자실, 신촌 세브란스병원으로 옮겨 재활치료를 이어갔다.
사고 이후 그의 일상은 완전히 달라져 버렸다. 손가락은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고, 다리는 '내 몸이지만 내 것이 아닌' 상태가 됐다.
"혼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게 너무 절망적이고 부끄러웠어요."
그를 가장 괴롭힌 건 신경인성 통증이었다. 불에 지지는 듯한 고통과 전기가 흐르는 듯한 저림이 밤마다 이어졌다. "의사가 그러더군요. '이 통증은 평생 관리하며 살아야 합니다.' 피할 수 없다면 같이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죠." 10개월의 입원 생활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
24평 아파트의 문턱은 휠체어 진입을 가로막았고, 욕실 역시 접근이 어려웠다. "여기서 내가 살 수 있을까." 집 밖의 환경도 다르지 않았다. 인도의 턱과 계단, 엘리베이터 없는 상가, 장애인 화장실이 없는 식당, 제때 오지 않는 저상버스가 일상을 가로막았다.
"비장애인을 기준으로 만들어진 세상 곳곳에서는 장애인이 설 자리가 없더군요. 제가 장애인이 되고 나서야 그걸 알았습니다."
박 씨는 결국 32평 아파트로 이사하며 집 구조를 전면 개조했다. 문턱을 없애고, 손잡이를 레버형으로 바꾸고, 세면대를 휠체어 높이에 맞췄다.
"그때 깨달았어요. 장애인의 자립은 개인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구조의 문제라는 걸요. 필요한 건 동정이 아니라 접근 가능한 사회였습니다."
퇴원 이후 돌봄의 부담은 고스란히 가족에게 돌아갔다. 그는 '산재'장애인 이라는 이유로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 대상에서 제외됐다. 결국 아내가 모든 돌봄을 전담해야 했다.
홍서 씨보다 체구가 작은 아내는 하루에도 여러 차례 그를 침대에서 휠체어로 옮겨야만 했다. 그러던 중 휠체어 잠금장치가 풀리는 사고가 발생했고, 이를 혼자 수습하려다 아내는 요추 골절을 입었다.
그러나 당장 아내를 대신할 공적 돌봄은 어디서도 구할 수 없었다. 결국 아들이 출근 전 이른 새벽 집에 들러, 휠체어 이동과 외출 준비를 도왔다. "한 시간만이라도 도와줄 사람이 필요했는데, 그게 그렇게 어렵더라고요."
홍서 씨는 묻는다. "장애인 당사자의 목소리가 빠진 무장애 도시가, 과연 무장애일 수 있을까요?"
"우리 없이 우리에 관해 말하지 말라(Nothing About Us Without Us). 이 원칙이 선언이 아니라 현실이 될 때, 무장애 도시는 비로소 선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삶이 될 것입니다."
그의 질문은 장애인의 삶을 좌우하는 정책이 당사자 없이 결정될 때 얼마나 공허한지를 꼬집는다.
출처: 오마이뉴스 https://www.ohmy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