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가족 이야기

게시판 장애인가족 이야기

뒤늦게 알아줘서 미안해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리나 작성일 24-04-15

본문

한글을 때우지도 못하고, 장애라는 꼬리표를 달았던 나의 가족 이야기를 들려주고자 한다. 귀가 안 좋아, 어떠한 말도 제대로 듣지 못해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을 수 없었던 할머니의 이야기이다. 할머니는 언어 교육을 받지 못했던 가난한 형편으로 인해 늘 불빛도 들어오지 않는 곳간에서 자라오셨다. 집도 아닌 곳에서 사계절을 보내며 제대로 된 옷도 입지 못했을 형편을 떠올리면, 나는 할머니가 여전히 너무 대단하다고 느낀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할머니를, 그 누구도 도와줄 수 없었다. 그렇게 허무한 하루하루가 지나가고, 할머니는 할아버지를 만나게 되셨다. 할아버지 역시 몸을 가누기 어려워 힘들어하셨던 분이었다. 어려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둘은 함께 극복해 나갔고 나의 아빠가 탄생했다. 다행히 아빠는 건강한 신체를 가졌다. 사실 나는 할머니가 많이 원망스러웠다. 아무런 소통도 대화도 하지 못하는데 왜 명절에 할머니를 뵈러 가야 하는 걸까, 과연 내가 손녀라는 것을 인지하고 계실까 하고 말이다. 그저 몸짓으로 어렵게 이해해야 했던 것들이 나는 너무 억울했다. 날이 갈수록 전혀 이해 안 되는 할머니의 행동에, 나는 할머니와 더욱 같이 있기 싫어졌었다. 만약, 할머니가 어린 시절에 부유했다면 금방 치유할 수 있었을 텐데. 형편까지 따라주지 않는 현실이 너무 나게도 고달팠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왜 이런 어리석은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 정작 가장 힘들었을 사람은 할머니 일 텐데. 할머니 집에 갈 때마다 환하게 웃고 계시는 할머니 뒤에는 얼마나 많은 눈물이 있었을지 내가 감히 추측할 수 없었다. 그저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웃는 할머니가 미워 보였다. 왜 내가 그런 생각이 들었을까. ‘장애인’이라는 꼬리표가 나 자신을 비참하게 만들었던 걸까? 그냥 할머니랑 같이 있기 싫었던 거였을까? 가끔은 나 자신이 너무 이기적인 것만 같았다. 할머니도 남들과 똑같은 사람인데. 왜 나는 할머니를 남들과는 다른 것들로 분류되어 갈까. 왜 사람들은 나의 할머니를 따가운 눈총으로 바라보는 것만 같을까. 도대체 평범의 기준은 무엇일까 궁금했다. 남들이 말하는 똑같은 것은 무엇일까? 왜 우리 할머니는 다른 취급을 받아야 할까 하고, 제약되는 현실 사회를 난 받아들일 수 없었다. 왜 나는 내 할머니를, 남들이 생각하는 기준에 맞춰 함부로 판단했을까. 너무 후회되었다. 이제부터라도 효도하고 싶다. 언어로 소통할 수는 없더라도, 서로의 미소에 감정을 이해해주고 싶다. 모든 것을 알고 이해할 수는 없더라도, 할머니는 내가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좋겠다. 그동안 고생했을 장애인에게, 그 시선을 버텨왔을 나의 할머니에게 수고했다고 말해주고 싶다. 그 누구보다 대단했던 나의 할머니는, 여전히 장애인이라는 단어를 얹고 살아가셔야 하지만 무엇보다 빛나는 사람이다. 장애인이라고 다른 취급을 받을 필요가 없었다. 더 행복하셔야 할 자격이 있으셨고, 그저 그것을 아직 못 받으신 것 뿐이다.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어떠한 판단도 섣불리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모두에게 알려주고 싶다.

첨부파일